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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주가 순식간에 지나갔다. 557만표. 문재인 대통령은 역대 대선에서 1·2위 후보 간 최다 표차로 당선됐다. 득표율은 절반이 안된다고 해도 압도적 당선임은 분명하다. 정권교체에 대한 여망, ‘나라를 나라답게’ 바꿔야 한다는 “절박함”이 투영된 결과다. 문 대통령은 대선 다음날 10분간의 짧은 연설로 새 정부의 비전과 포부를 밝혔다.
문 대통령은 ‘꿈꾸는 미래 대한민국의 모습’으로 이렇게 말했다.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문재인 정부가 꿈꾸는 대한민국의 미래의 출발은 인사가 될 터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11일 오후 신임 수석 비서관들과 오찬을 갖은 후 청와대 소공원에서 차담회를 갖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왼쪽부터 조국 민정수석, 권혁기 춘추관장, 문 대통령, 이정도 총무비서관, 조현옥 인사수석, 송인배 전 더불어민주당 선대위 일정총괄팀장, 윤영찬 홍보수석, 임종석 비서실장. 청와대사진기자단
실상 역대 정권들의 부침은 대개 인사에서 비롯됐다. 10년 전 531만표차 압승을 거두고, 10년 만에 보수정권을 되찾았던 이명박 대통령이 상징적이다. 초대 조각 명단을 보면 오만과 자만에 빠졌다. 땅을 사랑해서 불법으로 농지를 가진 이가 있었고, 암이 아니라는 진단에 남편으로부터 오피스텔을 선물받은 이도 있었다. ‘고소영’ ‘강부자’가 득실댔다. 이 전 대통령은 취임 한 달 만에 지지도가 40% 아래로 곤두박질쳤고, 정권의 싹수도 노래졌다. 찍은 손가락을 탓한 국민들은 4대강 삽질에 임기 내내 한숨만 늘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수첩’에서 사람을 찾다보니 감동과는 거리가 멀었다. 김용준·문창극·안대희…. 국무총리를 세우는 게 그렇게 어려웠다. 정홍원 총리는 후임자가 번번이 낙마해 짐을 쌌다 풀기를 반복하다 ‘대안 없음’에 눌러앉았고, 나중에는 황교안 법무장관을 총리로 옮겨놨다. 김병관·김종훈·한만수·황철주·김학의 등 취임도 못하고 물러난 이들이 한둘이 아니다. 초기 국정이 엉망진창이 되자, 여섯 달 만에 김기춘을 비서실장에 기용해 정부와 여당, 나아가 국민들까지 발아래에 두려 했다. ‘막장 국정’의 마각이 드러났던 것이다.
기대와 희망이 ‘긴가민가’ ‘혹시나’로, 그것이 실망으로 바뀌는 건 금방이다. 비정규직·실업·소득격차·노후 불안 등속의 사회경제적 상황,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안보적 상황은 당면한 문제다. 국민들은 이런 위험에서 벗어나게 해줄 역량 있는 정부와 대통령을 바라고 있다. 여소야대의 정치지형은 대통령 혼자서, 여당과만 ‘더불어’ 할 수 없다. 그런데 대통령직인수위원회도 없이 정권의 문을 열었다. 정권 출범을 위한 준비가 부족한 것은 예견됐던 일이다. 그래서 문 대통령도 준비된 대통령을 내세웠던 거 아닌가. 국민들은 멍석을 깔아줬다. 무엇을 준비했는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성과로 보여야 한다. 정치는 결과로 책임지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 후 첫 토요일인 13일 오전 대선당시 캠프 '마크맨'을 담당했던 기자들과 북안산 산행을 위해 청와대 경내 북악산 입구를 출발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국민들이 문재인 정부에 대한 ‘즐거운 상상’을 하게 해주려면 내각과 청와대에서 함께 일할 제대로 된 진용을 짜야 한다. 결국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고, 그 사람들에 대한 기대는 국민들이 갖게 될 희망과 비례할 것이기 때문이다. 희망이 사라지면 무기력이 지배한다. 문 대통령은 ‘고른 인재등용’과 ‘능력에 따른 적재적소 배치’ 원칙을 제시했다. 병역면탈, 부동산투기, 세금탈루, 위장전입, 논문표절 등 ‘5대 비리 관련자’는 고위 공직자 대상에서 원천적으로 배제해야 한다고 했다. 적폐 청산에 대한 공언도, 새 정부의 출범이 “진정한 국민통합의 시작”이라던 다짐도, 1차 시험대는 국민의 기대에 다가서는 인사가 될 것이다.
야당과의 허니문도 새 정부의 기대만큼 오래가진 않을 것이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야당이 협치에 선선히 협조할 거라고 보기도 어렵다. 오히려 상당한 긴장과 갈등이 예상된다. 좌파 청산을 부르짖었던 자유한국당 홍준표 전 대선후보는 야당 10년 해봐서 야당 어떻게 하는지 알고 있다, 세련된 좌파를 만났으니 한 수 위의 정치를 하겠다고 했다.
가령 줄다리기를 한다고 생각해보자. 적폐를 걷어내려는 문 대통령과 막아서려는 기득권이 동아줄을 잡고 경기 시작을 알리는 휘슬이 울리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하자. 출발은 팽팽할 것이다. 정권 초기 힘이 있으니까. 본격적으로 줄을 잡아당기다 어느 순간 힘의 균형은 무너지고 한쪽으로 기운다. 한쪽이 밀리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고, 더 이상 해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게임은 끝이다. 최종 승자가 어느 쪽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쪽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촛불시민들은 안다. 한데, 대통령 뒤에서 함께 줄을 당기는 자들이 시원찮다면 결과는 뻔해진다.
국무총리 후보자와 청와대 참모들의 면모가 일부 공개됐다. 참모들은 활력 있어 보이고 개혁을 하겠다는 대통령의 메시지도 읽힌다. 여론 반응은 일단 나쁘지 않다. 아직은 일부분에 불과해 온전한 평가를 하기에 이르다. 지금부터 한 달이 정권의 앞날을 예고할 것이다.
안홍욱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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