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2018년 10월 14일 지면게재기사-

요즘 국제뉴스들을 보면 보수반동의 득세라는 말이 실감난다. 세상이 그렇게만 돌아가지는 않을 텐데도, 그리 비친다. 세계 주요 국가 정상들의 비정상적 행보가 튀어 그럴지 모르겠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상식 밖 언사는 질릴 만한데도, 최강국 대통령 말이다보니 여전히 신경이 쓰인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과거 지우기’ 행태는 또 어떤가. ‘지구의 허파’라는 아마존 열대우림의 화재가 지속되면서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까지 조명됐다. 이들의 극단적 언행은 2차 대전 즈음 유럽을 휩쓸었던 파시즘을 떠올리게 한다. 세계는 퇴행하고 있는가. 

트럼프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파시스트다. 이주민·난민·빈민·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노골적 편견을 드러내고, 환경이슈는 제쳤다. 힘의 논리를 앞세워 세계 곳곳에서 분쟁을 마다하지 않는다. “나 미국 대통령이야. 어쩔래?” 하는 식이다. ‘우크라이나 스캔들’에 대처하는 행태는 고개를 흔들게 했다. 지난 7월25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통화하면서 대선 라이벌인 민주당 조 바이든 전 부통령 부자의 부패 의혹 조사를 압박했다는 의혹을 뒷받침하는 정황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가짜뉴스’라고 우긴다.

현안에 대한 입장도 편의에 따라 바뀐다. 터키군의 시리아 쿠르드 자치지역 침공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했다가, 국제사회의 비판이 커지자 “터키 경제를 쓸어버릴 것”이라고 했다. 홍콩 사태를 두고 “인도적 해결” 운운하더니, 미·중 무역협상이 일부 타결되자 “(시위가) 많이 누그러졌다”고 했다. 사실, 두 차례 북·미 정상회담을 지켜보며 잠시나마 그가 한반도 평화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조변석개 행태를 보면서 그가 소명의식을 갖고 다뤄야 할 비핵화 이슈를 재선과 노벨 평화상 수상을 위한 한갓 이벤트 정도로 생각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만 커지고 있다.

아베는 ‘제국주의 일본’의 재림이 가능하다는 헛된 공상을 한다. 일본군 위안부나 강제징용 등 식민지배와 전쟁 책임을 회피하는 수준을 넘어 과거를 적극 미화한다. 지난 4일 임시국회 연설에서 “일본이 내걸었던 큰 이상은 세기를 초월해 국제인권규약을 시작으로 국제사회의 기본원칙이 됐다”고 주장했다.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도 불편한 과거를 묻어버리려는 막가파식 속성에서 비롯됐을 테다. 후쿠시마의 파국적 상황을 덮는 수단으로 도쿄 올림픽을 활용하겠다는 발상은 일본 내에서도 비판받는다.

문제는 ‘유사 트럼프’와 ‘유사 아베’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브라질의 트럼프’라는 보우소나루는 아마존의 무분별한 상업적 개발을 허용, 두 달째 지속되는 아마존 열대우림 화재를 초래했다. 그럼에도 그는 세계의 비판 여론을 음모론과 막말로 대응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국제사회 반대에도 시리아 쿠르드 자치지역에 대한 군사작전을 감행했다. 비판이 커지자 “군사작전을 비난하면 (터키에 있는) 시리아 난민 360만명을 유럽에 보낼 것”이라고 협박했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은 법을 넘는 공권력으로 ‘징벌자’ 별명이 붙었다.

극단적 지도자들의 행태에는 공통점이 있다. 도 넘은 ‘자국 제일주의’다. 어느 나라 대통령이든 자국 이익을 우선시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들의 행태는 지나치다. ‘주판알’만 튀기느라 동맹에 대한 신의도 저버리는 트럼프나, 과거의 잘못을 보복으로 되갚는 아베의 근본은 똑같다. 그런데도 이들의 지지기반은 비교적 탄탄하다. ‘우크라이나 스캔들’ 같은 사건이 한국에서 벌어졌다면 많은 수의 국민들이 광화문에서 촛불을 들었을 테지만, 미국 내에서 트럼프의 골수 지지층은 여전하다 한다. 아베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50%대의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어떻게 이런 상황이 가능한가. 이들이 내세운 자국 제일주의가 일정부분 국내 지지를 얻는 건 분명해 보인다. 이들이 외부 적을 설정하고, 곪고 있는 내치에 쏠리는 국민의 시선을 밖으로 돌리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일견 타당하지만 그것만은 아닐 테다. 상식적 정치세력의 지지부진, 혹은 실패가 보수반동 득세를 부른 것은 아닐까. 실제 트럼프는 지난 대선 때 기성 정치권에 대한 유권자들의 반감을 파고들어 뜻밖의 승리를 거뒀다.

그래서 보수반동의 득세를 남의 나라 일로만 볼 수 없다. 문재인 정부가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면 트럼프나 아베 같은 극단적 지도자가 등장하지 않을 것이라고 누가 보장할 수 있겠는가. 보수야당 리더들의 면면을 보라. 시민들은 눈을 부릅떠야 한다. 조국 논란을 관리 못해 중도층 이탈을 부른 여권도 현 상황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용욱 국제부장>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5/0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