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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규 사회부장


최병렬 전 서울시장은 별명이 ‘최틀러’다. 밀어붙이는 힘이 탁월하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다.


17년 전인 1995년의 일이다. 최 시장은 단국대 풍치지구 문제로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서울시 간부에게 풍치지구 해제를 검토하라고 지시한 게 발단이 됐다. 풍치지구는 산림의 상태가 좋거나 자연경관이 뛰어난 곳을 훼손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규제하는 일종의 안전장치다. 단국대는 학교 캠퍼스를 둘러싼 울창한 숲 때문에 풍치지구로 지정돼 개발이 제한돼 있었다. 서울 캠퍼스 땅을 팔아 지방 이전계획을 세웠지만 풍치지구 때문에 제값을 받지 못하자 서울시에 풍치지구를 해제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단국대 총장은 최 시장과 막역한 김학준씨였다. 


 최 시장은 단국대 이전이 수도권 과밀현상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풍치지구가 갖는 상징성은 잘 알지 못했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진 뒤 여론이 들끓었다. 시민단체와 서울시의회를 중심으로 “서울시민의 허파를 도려낼 심산이냐”는 비난이 쏟아졌다.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풍치지구는 다른 어떤 명분과 맞바꿀 수 없는 보존의 대상이었다. 최 시장은 여론을 설득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그는 결국 풍치지구 해제 계획을 철회했다. 서울의 자연경관을 보호해야 한다는 심리적인 규제장치가 작동한 것이다.


최근 중부지방에 내린 집중호우 탓에 서울에 물난리가 났다. 지난 15일 서울에 하루 동안 약 152㎜의 비가 쏟아졌다. 이 바람에 서울 강남대로에 물이 무릎높이까지 차오르면서 도로 기능이 마비됐다. 전형적인 계획도시인 서울 강남이 비만 내리면 물에 잠기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침수피해는 한꺼번에 비가 집중된 데다 지대가 낮은 지형여건이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노후한 배수시설도 한몫을 했다.


강남역 인근 도로가 침수돼 차들이 물살을 가르며 나아가고 있다. (출처: 경향DB)


그러나 강남 침수의 이면에는 개발의 어두운 그림자가 자리 잡고 있다. 콘크리트와 대리석으로 치장한 강남의 개발 후유증이 피해를 키우고 있다는 얘기다. 서울시 조사결과를 보면 도시화 이전인 1962년 서울시의 빗물 침투율(전체 강수량 중 땅속으로 스며드는 비율)은 47%에 달했다. 그러나 2010년 도시화가 급격히 진행된 뒤 우수 침투율은 26%로 급감했다. 대신 강으로 흘러드는 빗물은 1962년 전체 강수량의 11%에 그쳤지만 2010년에는 49%로 급격히 높아졌다. 콘크리트에 막힌 빗물이 땅속으로 스며들지 못한 채 그대로 흘러 넘치면서 비 피해를 키우고 있는 셈이다.


강남의 침수 피해를 ‘자연의 역습’으로 보는 시각은 이 때문이다. 무분별한 개발로 산사태가 나면서 인명과 재산피해를 키운 우면산 산사태도 같은 이치다.


이번 비 피해를 계기로 콘크리트 일색의 서울 도시문화를 다시 한번 생각해볼 시점이 됐다. 서울은 도시화로 이미 몸살을 앓고 있다. 한강과 도시 외곽의 주요 산을 제외한 서울 도심의 불투수포장비율(빗물이 스며들지 않는 포장 면적의 비율)은 무려 63.7%에 달한다. 독일의 프랑크푸르트와 하노버는 각 42%와 47%다. 개발논리에 밀린 자연환경을 원상태로 돌려놓고 녹색공간을 확보하는 게 그 해답일 수 있다. 녹색이 사라진 도시는 정서적인 삭막함뿐 아니라 자연재해에 취약하다는 사실은 이미 전 세계적으로 입증됐다.


서울은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인 천혜의 자연조건 때문에 상대적으로 녹지가 풍부한 편이다. 이를 제외하면 실생활권 공원 면적은 열악하다. 2009년 서울의 인구 1인당 공원 면적은 5.46㎡로 뉴욕(10.27㎡), 런던(24.15㎡), 파리(10.35㎡)에 비해 턱없이 낮다. 서울시도 한때 녹지공간 확보에 열을 올리던 시절이 있었다. 1997년 서울 여의도 5·16 광장의 콘크리트를 걷어낸 뒤 공원을 조성하겠다는 계획은 당시로서는 가히 혁명적인 발상이었다. 군(軍)과 여의도광장 상인들의 거센 반발을 뚫고 만든 여의도공원은 시민들의 친숙한 공간으로 새로 태어났다.


녹지공간 확보는 전시성 개발사업에 목말라하는 민선 서울시장에게는 그리 매력적인 사업이 아닐 수 있다. 청계천이나 광화문광장 같은 폼 나는 사업에 자신의 이름 석자를 붙이고 싶어한다. 하지만 화려함 뒤에는 또 다른 자연의 역습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수차례 경험한 바 있다.


서울시는 지금도 도심 녹지축 복원을 비롯한 수많은 녹지확충 계획을 갖고 있지만 모두 서랍 속에서 잠자고 있다. 역대 시장이 별로 내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대가 달라졌다. 굳이 여의도공원같이 대규모 공원이 아니라도 좋다. 동네 어귀의 자투리 땅 몇십평을 작은 공원으로 만든 뒤 시민들에게 돌려주는 것은 폼은 나지 않을지 몰라도 시민들의 삶을 풍성하게 만들 수 있다. 공원을 만든다고 반대하는 사람은 별로 본 적이 없다. 풍치지구로 둘러싼 숲의 나무 한 그루가 어떤 개발명분과 맞바꿀 수 없는 서울의 허파로 인식된 1995년의 서울 풍경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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