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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탁탁….” 아파트 현관문을 두드리는 둔탁한 소리를 듣고 “누구세요” 하며 나름 잽싸게 나가기를 몇번째. 그러나 매번 문 앞에 덩그러니 놓인 택배상자나 우편물을 볼 때가 많다. 엘리베이터는 붉은 숫자를 표시하며 이미 아래층으로 향하고 있다. 그 안에는 분명 방금 다녀간 우체국 집배원이나 택배 기사가 타고 있을 거였다. 1~2주일 전 토요일,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날은 운좋게 택배 기사와 만났다. “고맙습니다. 더운데 차가운 물 한 잔이라도 드….” “아뇨오. 바빠서…요!” 웃옷의 목덜미가 젖어 있던 그는 장갑 낀 손으로 얼굴의 땀을 훔치고 손사래를 하고선 급히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스스로에게 잠시의 빈틈도 허락할 수 없다는 듯. 시간은 그의 것이 아니었다.

‘저녁이 있는 삶’은 한국사회의 중요한 어젠다이다. 우리는 ‘저녁이 없는 삶’이 어떤 것인지 잘 안다. ‘저녁’ ‘있는’ ‘삶’ 이들 단어는 평범하기 그지없지만 현재 한국사회가 직면한 문제의식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러나 저녁은 고사하고 최소한의 점심시간과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분초를 다투며 쫓기면서 일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신속한’을 내세운 퀵서비스나 배달대행 기사들의 일이 특히 그렇다. 배달대행을 따내기 위해 ‘콜’ 신호를 재빨리 잡고, 그만큼 또 빨리 배달해야 하는 경쟁에 내몰린 이들에게 ‘시간은 =곧 돈이고 =생계(목숨)다’.

지난 9일 경부고속도로에서 광역버스 운전기사의 졸음운전이 낳은 참사도 결국은 과도한 노동시간이 원인이었다. 사고가 나기 전 운전기사의 근무시간을 보면 5일 15시간30분을 비롯해 6일(18시간15분), 7일(휴무), 8일(18시간9분) 등 믿기 힘들 정도로 많다. 사고 전날인 8일에는 운전시간만 16시간이었다고 한다. 일본 운전기사들의 근무시간은 최대 9시간이다.

안양우체국 소속 어느 집배원(48)이 지난 6일 자신이 21년간 일하던 우체국 앞에서 분신자살했다는 뉴스를 접하고도 믿기지 않았다. 과도한 업무량에 비해 턱없이 모자란 인력 상황 등이 새삼 알려지면서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누군가의 사랑하는 자식이고, 또는 아버지였을 그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전까지, 동료들과 숱한 고민을 나누며 변화를 위해 애썼을 것이다. 그러나 가로막힌 벽들을 느끼며 숨이 막히고 다리에 힘이 풀렸을 것이다. 1970년 초겨울 전태일이 분신한 것이 어느덧 47년 전 일이다. 스물두 살 청년이 열악한 노동조건을 알리다가 끝내 쓰러진 지, 믿기지 않지만 ‘반세기’가 흘렀다.

우리는 과연 발전하고 있는 것일까. 지난해 국내 출간된 <사피엔스의 미래>를 읽으며 잠시 고민한 적이 있다. 책은 2015년 열린 ‘멍크 디베이트’ 내용을 옮겨놓은 것인데 소설가 알랭 드 보통, 언론인 말콤 글래드웰, 인지과학자 스티븐 핑거, 동물학자 매트 리들리 등 스타 지식인들이 편을 나눠 ‘인류의 미래는 더 나아질 것인가’라는 주제를 갖고 토론한 것이었다. ‘보통-글래드웰’(인문학)팀은 전쟁과 잔인한 범죄 증가, 인간성 상실 등을 들며 미래를 비관했다. 반면 ‘핑거-리들리’(과학)팀은 수명연장, 빈곤극복 등 인간의 외적 삶이 유례없이 나아졌다며 낙관했다. 알랭 드 보통이 과학팀을 향해 “극도로 물질주의적 관점”이라며 맹공을 폈지만 결국 이날 토론은 관객들의 투표결과 핑거-리들리팀의 승리로 끝났다.

그러나 최근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떠올리면 ‘발전’에 손을 들 용기가 없어진다. (경제)발전은 풍요와 여유로운 시간을 보장하는 것이지만, 누군가의 (노동)시간은 더욱 착취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의 아이돌 ‘인공지능(AI)’이 잘 실현된다면 ‘잉여시간’으로 풍요로움을 누릴 수 있을까. 우리 바로 옆에서 노동시간에 쫓기며 쓰러져가는 사람들이 있는 한 AI시대는 허황된 사탕발림처럼 들린다.

31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고용노동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고 근로기준법 개정을 위한 논의에 들어간다고 한다. 주당 노동시간을 52시간으로 제한하는 내용과 사실상 무제한 노동이 허용되는 ‘특례업종’의 수를 줄이는 내용이 골자다. 재계의 반발 등 법개정이 순탄치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진정한 발전을 위해 바뀌어야 한다.

어떤 화장품은 뒷면 제품설명을 보면 동물테스트를 거치지 않았다거나, 화석연료가 아닌 친환경에너지로 만들어졌다는 등의 설명이 붙어 있다. 일부 커피나 옷에도 공정무역을 거쳐 만들어졌다는 표시가 있다. 배달서비스든 뭐든 이제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 내가 신속하게 배달받은 음식과 상품들, 타고 있는 버스와 지하철의 서비스는 과연 ‘공정한 시간’을 거친 것인가.

김희연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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