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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명의 생명이 스러진 이태원 핼러윈 참사의 ‘국가애도기간’이 지난 5일 끝났다. 하지만 끝난 게 아님을 우리 모두는 안다. 

윤석열 대통령은 참사 다음날인 지난달 30일 대국민담화를 통해 5일까지를 ‘국가애도기간’으로 선포하고 “사고 수습 및 후속 조치에 국정의 최우선 순위를 두겠다”고 했다. 국가애도기간에 윤 대통령은 매일 희생자 분향소를 찾았다. 출근길 문답은 하지 않았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국가애도기간은 말보다는 고개를 숙이는 애도의 시간이 돼야 한다는 것이 대통령의 뜻”이라고 했다. 

참사 사흘 만인 지난 1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윤희근 경찰청장 등 관계기관 수장들이 공식 사과했다. 경찰의 112신고 접수 녹취록 공개로 정부의 부실 대응이 뚜렷이 드러난 날이다.

윤 대통령의 사과 메시지는 그보다 사흘 뒤인 지난 4일 나왔다. 조계사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추모 위령법회’ 추도사를 통해 “국민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대통령으로서 비통하고 죄송한 마음”이라고 했다. 

5일엔 ‘한국 교회 이태원 참사 위로 예배’에서 “미안한 마음”을 표했다. 대국민담화가 아닌 종교행사 참여로 내비친 사과 메시지에는 “무한한 책임감” “큰 책임” 등의 표현이 들어갔다.

책임을 강조했지만, 윤 대통령의 사과 메시지가 시민들의 공감을 얻기 위해선 갈 길이 너무 멀다. 참사 후 일주일간 시민들은 자신들이 선출하고 세금을 낸 정부 책임자들의 민낯을, 시민 보호의 의무를 저버린 국가의 부재를 똑똑히 본 때문이다.  

참사 4시간 전부터 압사 위험을 알리는 112신고가 11건이나 들어왔지만, 참사를 예방할 조치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시민들의 구호 신호를 국가는 외면한 것이다. 정부는 참사 당일 이태원에 10만명 이상의 인파가 몰릴 것을 예상했음에도 이를 대비하지 않았다. “분명 피할 수 있는 일이었다”는 외신들의 평가가 참담하다. 

대응·수습 과정도 황망했다. 윤 대통령-이 장관-윤 총장의 역순으로 참사를 보고받는 등 국가 재난 대응 체계의 난맥상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현장 상황을 기록한 경찰 상황보고서에는 관할 경찰서장의 현장 도착 시간이 실제보다 약 45분이나 빨리 적혀 있는 등 허위 기재 정황까지 포착됐다. 

정부 책임자들은 책임을 회피하느라 바빴다. 이상민 장관은 “예년과 비교했을 때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였던 것은 아니었다”는 망언을 내뱉더니 “선동성 정치적 주장을 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라고 상식 밖 소리를 했다.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전략적인 준비를 다 해왔다” “축제가 아니라 일종의 현상”이라며 책임을 얼버무렸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관련 질문에 농담을 하더니 자신은 ‘사고’라고 말하지 않았다고 강변했다. 그런데 그날 기자회견 명칭에 ‘사고’라는 단어가 버젓이 들어 있는 건 안 보였나. 

집권여당인 국민의힘도 책임을 방기하긴 마찬가지다. 지도부는 “추궁이 아닌 추모의 시간”이라며 ‘닥치고 애도’를 강권하더니, 정부책임론이 거세지자 야당 탓, 전 정부 탓, 방송 탓을 하고 있다. 

이런 언동들이 드러내는 것은 분명하다. 시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이들이 공적 책임의 무게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느냐다. 이들은 참사를 사고라고, 희생자를 사망자라고 하면서 공적 책임을 외면하는 태도를 보였다. 참사의 원인과 책임 소재를 묻는 것을 ‘정치적’이라고 매도하면서 ‘사이비 애도’를 강요한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인 지난해 8월 당시 문재인 정부의 코로나 대책을 비판하면서 “위기 상황에서 정부의 존재 의의가 있는 것인데 이 정부는 정부가 존재할 이유를 증명하지 못했다”고 했다. 바로 그 ‘정부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는 것이 출범 6개월을 앞둔 윤석열 정부의 최대 과제가 됐다. 

윤 대통령을 풍자했다고 논란이 된 만화 ‘윤석열차’는 메타포다. 경로의존성. 일정한 경로에 의존하기 시작하면 그 경로가 비효율적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벗어나지 못한다. 관성이란 무서운 법이다. 한 번 속도가 붙은 열차를 멈춰 세우거나 궤도를 수정하는 건 쉽지 않다. 말 그대로 환골탈태(뼈를 바꾸고 태를 빼내다)의 노력이 필요하다. 윤 대통령이 말한 ‘수습 및 후속 조치’는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김진우 정치부장 jwkim@kyunghyang.com>

 

 

연재 | 아침을 열며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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