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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은 지금까지 세 권의 시집을 낸 시인이다. 작년에 출간한 세 번째 시집 제목이 <아름답고 쓸모없기를>이다. 이 제목 속에는 그의 삶의 태도와 시적 지향이 제대로 압축되어 있다. 시집의 제목으로 샘이 날 정도다. 이것은 ‘아름답고 쓸모 있기’를 바라는 이들을 향해 날리는 한 방의 주먹과도 같이 통쾌하다. 시집 속의 시들 역시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남의 말을 자세히 듣다가 마구 뛰어다니고, 얌전한 척하다가 끝내 일을 저지르고, 점잖은 말을 하다가 돌아서서는 시원한 욕을 쏟아내고, 부지런히 일을 하다가도 질펀하게 즐기는 화자들이 여럿이다. 젊은 시인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드디어 한 경지를 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가 내 집에 사람 불러 노는 일을 퍽 즐겨하는 사람이구나 하는 걸 알았어요. 혼자 놀기의 명수였다가 고스톱 판 깔아주기의 명수가 된 상황이랄까요.”
독자들로부터 김민정의 시는 때로 좀 야하다는 평가를 듣는다. 두 번째 시집 <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를 내면서 특히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 그의 시를 거북해 하는 독자들도 종종 있다. 시 속에 벌어진 일을 전부 그녀가 겪은 일로 동일시하는 사람들도 있다. 가족들도 그렇게 오해를 한 적 있다. 야한 얘기들은 본디 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여전히 변하지 않은 시에 관한 시선이 그는 불편하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내가 아는 김민정은 시인이자 유능한 편집자다. 시인으로 데뷔한 게 1999년이고 출판사 편집자를 시작한 게 1998년이니 엇비슷하게 출발한 셈이다. 스스로는 시인보다는 시집 편집자가 더 어울리는 사람 같다고 낮춘다.
“저는 문단의 김상궁이 되고 싶어요. 중전이 궐 안에 갇혀 주는 밥 먹고 입혀주는 옷 입고 오도 가도 자유롭지 못하고 누군가 고해야 돌아가는 상황을 알게 되는 막힌 귀의 여자라면 상궁은 궐 안팎을 자유로이 오가고 사방팔방 뚫린 데서 온갖 소문 다 듣고 그럼에도 발품을 팔아 사는 뚫린 귀의 여자니까요.”
이 말속에는 말보다 몸의 힘에 의존하는, 팔리기 위해 책을 만드는 게 아니라 버려지지 않는 책을 만드는 편집자가 되고 싶다는 다부진 꿈이 내재되어 있다. 그리고 궁궐 안에 갇혀 있다가 나라를 말아먹은 한 여인에 대한 은근한 비판의식도 깃들어 있다. 수다 속에 뼈를 끼워 넣는 수법이다.
마흔을 갓 넘어선 김민정은 이날까지 싱글이다. 혼자가 너무 편해서, 새로운 관계, 새로운 가족이 생기는 이물감이 너무 싫어서, 최선을 다해서 맺어야 한다는 강박도 강해서, 여전히 혼자 산다. 무엇보다 자신이 사는 집과 쓰는 물건들을 공유하고픈 마음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의 호들갑은 늘 자신감이 넘친다. 죽을 때까지 결혼은 절대로 안 할 생각이란다. 미치면 같이 살기는 해도.
“제가 놓은 그대로 내가 정한 그 자리에 모든 물건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흐트러지는 걸 지독히도 싫어해요. 물론 아주 근본적인 이유는, 그럼에도 이 모든 걸 뒤엎을 만한 사람이 없기 때문이겠죠.”
이런 식으로 그는 세상을 살아간다. 시와 삶을 일치시킨다는 것은 거의 종교적 수행에 가까운 행위다. 저 1980년대 리얼리즘 문학은 그 숭고한 목표점을 설정했지만 결국 무위로 돌아갔다. 지금의 김민정에게서 나는 시와 삶을 일치시킬지도 모르는 한 모델을 발견한다. 그동안 어떤 시인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던 ‘건강한 음란성’이라는 말이 그의 입을 통해 발설된다. 그에게 금기란 고장난 축음기에 불과한 듯하다.
여기까지만 보면, 김민정의 뭔가 특별한 성장과정이 있는 게 아닌지 궁금해진다. 그러나 김민정은 평범한 가정에서 평범한 부모의 지극한 사랑을 받고 컸다. 하루의 시작을 아버지의 모닝콜로 열고 하루의 마무리를 엄마의 굿나잇 전화를 받고 닫는다. 함께 살지 않아도 모든 것을 공유한다. 42년째 그녀의 밥상머리에서 생선을 발라주는 남자는 앞으로도 아버지 말고는 없다고 믿고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 두 사람이 살아온 것을 본 것과 두 사람이 해준 것을 받아온 것에 여한이 없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말하지 못할 것은 없다고 아빠가 말했어요. 그렇게 아빠가 가르친 자유로움이 저의 입과 저의 시와 저의 사유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싶어요. 덕분에 시에서도 그 어떤 강박을 느껴보지 못했으니까요. 반말과 술과 욕과 그럼에도 사람밖에 모르는 사람 좋음과 극단적으로 기복이 심한 감정까지 부모의 피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게 접니다.”
그런 김민정이 얼마 전, 사고를 쳤다. 뜬금없이 어떤 유명한 정치인에 대한 책을 엮어낸 것이다. 몇 해 전, 김민정은 우연한 자리에서 그 정치인을 만났다. 김민정은 그 정치인에 대해 살짝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어디에선가 그가 한때 신춘문예 당선작을 찾아 읽었다는 기사를 봤기 때문이다.
“신춘문예 당선작을 찾아 읽는 정치인이라면 적어도 문화와 예술을 존중까지는 아니어도 이해한다는 뜻으로 생각했어요. ‘부자 되세요’를 외치는 사람보다, 머리 손질에 몇 시간씩 쓰는 사람보다, 이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야 내가 편하고 나라가 편안해지는 거 아니겠어요?”
김민정은 그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그를 겪어봤다는 여러 사람들의 추억담을 모아보았다. 어릴 적 친구, 학교 동창, 군대 동기, 이웃사촌, 함께 일했던 동료, 사회에서 만난 지인 등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추억담을 모았다. 재미있는 이야기도 있고 감동적인 내용도 있고 엉뚱한 일화도 있었다. 하지만 문단의 선배로서 나는 그가 염려스러웠다. 정치와 시인의 발랄함이 어떻게 조화를 이룰지도 아직은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또 다른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오르는 시인이 되면 어떻게 하느냐고 농담을 던졌다. 김민정의 답은 명쾌했다.
“함께 길을 가다 서점이 보이면 슬그머니 들어가 책을 사주는 사람이 정치인이라면 괜찮은 사람 아닌가요? 앞으로 저야 뭐 끝끝내 시를 모르고 죽는 시인이 되어도 괜찮아요. 그래서 평생 시에 대한 호기심과 상상력이 충만한 시인, 시인으로 이름은 없지만 사람들로 하여금 그 이름이 궁금해서 가끔은 찾게도 되는 시인 말이에요.”
안도현 우석대 교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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