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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여적]펄

opinionX 2017. 3. 30. 10:52

바닷가나 해저에 생성된 흙을 말하는 펄(개흙)은 각종 어패류의 생명줄이다. 안학수의 시 ‘낙지네 개흙잔치’는 갯벌 생물의 살아가는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핥아먹고 키가 크는 고둥 조개들/ 찍어먹고 모래 빚는 칠게 방게들/ 갯지렁이 개불 쏙 짱뚱어까지/ 개흙을 좋아하면 아무나 오라/ …맛도 있고 몸에 좋은 자연산 개흙/ 오늘도 개펄마을 푸짐한 잔치/ 목마르고 배고프면 누구나 오라.’

유기물이 풍부한 펄은 어패류의 먹이다. 바닷물이 빠져나갈 때마다 수많은 게와 조개, 어류가 기어나와 갯벌을 뒤덮은 채 부지런히 펄을 먹는 진풍경이 연출된다. 갯벌은 이들의 서식지일 뿐 아니라 산란장이기도 하다. 수산물 하면 먼 바다를 떠올리기 십상이지만 전체 어획량의 60% 이상을 갯벌에서 올린다. 어민들에게 이만큼 소중한 생계원도 없을 터이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7년 3월 29일 (출처: 경향신문DB)

펄은 화장품과 관광상품으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충남 보령시가 바다 진흙을 가공한 머드화장품을 16종이나 생산할 만큼 인기다. 머드화장품이 인체에 유익한 원적외선을 다량 방출할 뿐만 아니라 게르마늄, 미네랄, 벤토나이트 성분이 풍부해 피부 미용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진 덕이다. 보령시는 지역 특산물인 ‘보령 머드’의 우수성을 홍보하기 위해 1998년 머드축제를 시작했다. 이 축제를 찾는 국내외 관광객 수가 300만명을 육박할 만큼 성장했다. 펄 구덩이 속에서 뒹굴며 노는 ‘뻘짓거리’는 최고의 관광상품이 되었다. 바보 같은 짓을 뜻하는 행위가 어촌 소득의 일등공신으로 변신한 셈이다.

해양수산부가 그제 세월호 인양작업 도중 반잠수식 선박 갑판에서 발견된 동물 뼈를 미수습자의 유골로 추정된다고 발표하는 바람에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사상 유례없는 대참사의 수습작업을 수행하는 정부의 어려움도 있겠지만 3년을 기다린 미수습자 가족들은 또 한번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을 겪었다.

해수부 측은 동물 뼈가 세월호 객실에 쌓여 있다가 창문 등 열려 있는 부분을 통해 배출된 펄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했다. 전문가들은 점성이 있는 펄이 미수습자의 시신이 유실되지 않도록 막아줄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온갖 생물을 먹여살리는 펄이 미수습자 9명 전원을 품고 있었기를 기도해본다.

조호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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