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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 사찰 파문이 확산되면서 여권 내에서조차 이명박 대통령의 하야론이 불거졌다. 이상돈 새누리당 비대위원은 어제 한 방송에 출연해 이번 사건을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을 물러나게 한 워터게이트 사건에 비유하며 “이 대통령이 사전 인지에 책임질 만한 일을 한 것이 밝혀진다면 사과로 끝낼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하야까지 요구할 수 있다는 말로 들린다”는 사회자의 지적에 “그런 해석이 가능하다”고 답했다. 새누리당은 즉각 ‘개인 생각’이라며 입막음에 나섰으나 그런 생각을 가진 당내 인사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이미 제기된 야당 원죄론에서 대통령 하야론에 이르는 180도의 부채꼴 스펙트럼이 혼란스러운 여당의 현주소를 대변하는 것 같다.
4·11 총선에 임하는 새누리당의 전략·전술 측면에서만 본다면 이 같은 대처는 나름 성공했다고 평가할 수도 있겠다. 여권은 문건이 공개되자마자 “사찰의 80%는 노무현 정부 때 이뤄졌다”며 전·현 정권의 공동 책임론을 제기했고, 심지어 과거 국정원 감청 사건까지 들먹이며 김대중 정부의 원죄론을 펴기도 했다. 지연 전술이 명백한 특별검사제 요구로 특별수사본부부터 꾸리자는 야권의 공세를 차단했고, 검찰은 ‘사즉생의 각오’ 운운하며 재수사 의지를 천명하는 쇼를 펼쳤다. 민주통합당은 습관적으로 특검론을 꺼내는 자충수를 두는 바람에 역공의 빌미만 제공했다. 그 결과 이번 총선에서의 민간인 사찰에 대한 심판은 사실에 근거한 냉철한 판단보다 인상에만 의존하는 반쪽짜리로 흐를 우려가 커졌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민간인 사찰에 대한 여당의 입장이 뭔지 여전히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새누리당은 관련 문건이 처음 공개된 지난달 30일 이후 세차례나 입장을 바꿨다. 지위고하를 막론한 책임자 처벌이라는 원론적 반응은 권재진 법무장관 퇴진과 특검 요구로 높아지는가 싶더니 돌연 ‘박근혜 피해자론’으로 둔갑한다. 참여정부 때 더 많은 사찰이 있었다는 청와대의 거짓말이 결정적 계기를 제공했다. 당초 새누리당도 인정한 ‘민주주의 파괴’라는 원초적 진실은 감춰지고 말았다. 설사 그들의 주장대로 참여정부의 사찰이 드러난다고 하더라도 이 정권이 자행한 민간인 사찰의 진실은 덮어지거나 달라지지 않는다. 더구나 이 정권은 국가기관과 돈까지 동원해가며 내부 고발자의 입을 막으려 시도하지 않았던가.
새누리당은 총선은 물론이고 대선 승리를 도모하는 집권 여당이다. 그런 여당이 민간인 사찰을 처리하는 방식을 보노라면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과 양식이 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민간인 사찰은 총선 이후 국회 청문회나 특검으로 갈 수밖에 없다. 어떤 경우든 어물쩍 넘길 수 없는 국가 중대사이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이 다시 국회와 국가 운영을 책임지겠다고 나설 요량이라면 진상을 규명하고 그 결과에 대해 유권자들의 심판을 받겠다는 각오를 다져야 한다. 그럴 의지와 역량이 없다면 총선, 대선 승리는 꿈도 꿔선 안된다. 아니 그럴 자격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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