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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가짜뉴스인 줄 알았다. 국정농단 대법원 판결 날, 포털 뉴스판에 뜻밖의 이름이 나란히 등장했다. 조국 법무장관 후보자 ‘찬반 간증대회’에 온 동네 사람들이 출연에 나섰지만, 현직 대통령 아들과 국정농단의 주범 최순실이 동시에 ‘조국 뉴스’의 스피커로 등장하리라곤 차마 생각 못했다. <문 아들 준용씨 조국 딸 향해 “이건 부당하다. 목소리 내라”>와 <최순실 “내 딸 유라 메달 따려 천신만고…조국 딸은 거저먹어”>, 그날 저녁 포털에서 ‘가장 많이 본 뉴스’의 앞줄을 장식했다. 청문 후보자 논란에 현직 대통령 아들이 나선 것도 낯설지만, 그 최순실이 대법원에 제출한 최후진술서에 뻔뻔스레 조국을 거론했다.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조국 사태’를 이리 희극적으로 간증하는 것도 없다.

엉망진창, 극단의 진영 깃발만 펄럭이면서 비롯됐다. 조국의 거취는 진영의 명운을 건 정치적 승부처로 바뀌었다. 불공정과 특권, 신분과 세습, 위선 등 제기된 의혹과 허물에 대한 검증과 성찰은 디딜 땅이 없다. 이제 진실과 도덕의 무게는 중요하지 않다. 싸움에서 이겨, 조국을 지키느냐 마느냐만 남아 있다. 자유한국당이 법적 절차인 국회 인사청문회를 무산시킨 것도, 여권이 ‘국민청문회’를 실행한 것도 승부의 유불리만을 따진 결과다. 국민청문회에서 조 후보자의 사과와 해명이 이 싸움의 성질을 바꾸기는 어렵다. 서로 진영의 확증편향에 활용될 뿐이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2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biggun@kyunghyang.com

여권에는 조국을 지키는 것은 숙고의 영역이 아니라 신념의 영역이다. 그러니 불공정을 비판하고 박탈감을 토로하는 청년들에게 조롱도 마다하지 않는다. “하늘이 내려준 기회”라며 승냥이처럼 달려드는 한국당이라는 거악에 맞서 조국을 지키는 것이 절대가치인 마당에 다른 고려는 들어오지 않는다. “동년배들이 가졌을 실망감이나 분노에 저도 아프도록 공감하고 있다”는 이낙연 국무총리의 감수성이 별나라 얘기처럼 들리는 상황이다. 사활을 건 진영 대결이 된 ‘조국 대전’은 이제 이성의 영역을 넘어섰는지 모른다.

엉망진창, ‘조국 정국’에 검찰이 등판하면서 가속됐다. 검찰이 청문회 전에 후보자 의혹, 그것도 수사지휘권을 가진 법무장관 후보자에 대해 직접 수사에 나섰다. 헌정사에 유례가 없다. ‘조국 대전’의 심판을 자임한 꼴이다. 후보자에 대한 찬반을 떠나 검찰이 정치과정에 개입, 최종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비극이다. 초반 대처 실패와 높아진 부정여론이 검찰로 하여금 진격을 감행케 했을 터이다. 검찰개혁을 한다고 조국을 법무장관에 임명했는데, 검찰이 칼을 들고 우리가 판정하겠다고 나선 상황이다. ‘조국의 역설’이다. 능히 윤석열 검찰은 ‘살아 있는 권력’을 손댈 수 있음을 보여주면서 검찰개혁을 무디게 하는 결과를 꾀할 수 있다. 검찰의 손에 검찰개혁의 상징처럼 부각된 조국의 운명이 맡겨진 형국이다. 임명돼도 “조국 법무장관’의 검찰개혁 동력은 반감될 수밖에 없다. 벌써 검찰에서 “누가 누구를 개혁하느냐”는 말이 나온다. 조국 법무장관 지명의 명분인 검찰개혁 전제가 위협받고 있는 셈이다.

노무현 정부 초대 법무장관이었던 강금실 전 장관은 노무현재단이 펴낸 정책총서 <진보와 권력>에서 “참여정부의 검찰개혁은 불법 대선자금 수사로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고 술회했다. “청와대가 피의자 측 조사 대상이 되며 검찰개혁을 언급하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 됐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당시 검찰개혁의 핵심 과제였던 대검 중수부 폐지를 실행하지 못했다. 하물며 피의자 신분의 법무장관이 “인피를 벗기는 형벌에 준하는 검찰개혁”을 밀고갈 수 있을까, 지난하다.

혁명보다 어렵다는 개혁은 한 차원 높은 도덕성과 신뢰가 큰 무기다. 설득과 동의를 얻어 이뤄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조국은 신뢰의 위기에 처했다. 어제 국민청문회에서 신뢰를 회복해 다시 개혁 동력을 확보했는지는, 이후 여론에서 가름될 터이다.

예정대로 ‘조국을 지키고’ 가면 그 운명을 검찰 손에 맡겨야 한다. ‘조국 법무장관’ 수사는 단순 개인의 검증 차원을 넘어선다. 검찰개혁의 향배와 문재인 정부의 남은 임기 운영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결과에 따라 조국 개인의 일을 정권 전체의 허물로 바꿔버리는 상황이 도래할 수도 있다.

그래서 묻게 된다. 조국의 진퇴와 정권의 명운을 직결시키는 위험을 감수할 만큼 여전히 ‘그’뿐인가. 총체적으로 엉망진창인 상황을 전복하기 위해 판 자체를 바꾸는 발상의 전환은 불가능한 것일까.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는 다시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실패하지 않을 목적어의 앞줄에 노무현 정부가 못다 이룬 ‘검찰개혁’이 놓여 있을 터이다. 정녕 ‘아직도’ 조국 법무장관은 실패하지 않을 ‘유일무이한’ 카드일까.

<양권모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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