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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입시는 한국에서 온 국민의 관심사다. 언론은 예비고사, 학력고사, 수능 1등이 누구인지를 찾아내 공개해왔고, 수능 오답이 나오면 관련 분야 석학끼리 논쟁을 벌이기도 한다. 교육부가 입시 방향을 정할 때마다 여론은 매섭게 편을 가른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다. 조국 전 장관의 딸 입시 문제가 이슈가 되고 여론의 뭇매를 맞자 문재인 대통령은 “정시를 확대하겠다”는 메시지를 국민들에게 전했다. 논쟁에 또 한번 불이 붙었다. 학생부종합전형(학종)파와 정시파의 논쟁이 시작됐다.

1980년대까지 대학은 20% 이내가 가는 곳이었다. 대입제도에 대한 논쟁이 있을지언정 교육 전반의 문제는 아니었다. 그저 고교 성적 상위 20%의 줄을 어떻게 세우느냐의 문제였다. 그러나 1990년대에는 신설대학이 늘면서 50%가 가는 곳이 됐다. 2000년대 이후 70~80%가량이 대학에 가게 됐다. 대학을 졸업한 학부모들도 늘었다. 대입을 겪어본 학부모와 그들의 자녀가 있다. 더 많은 의견을 내는 것은 자연스럽다. 

다양한 연구들을 보면 학종은 교사와 대학교수들이 좋아한다. 학부모는 통계적으로 특별한 선호가 안 잡힌다. 학종팬도 있고 정시팬도 있지만, 자녀가 적성을 잘 살려 원하는 대학 중 가장 좋은 곳을 갈 수 있게끔 제도에 잘 맞추려 한다. 정책이 사교육비를 줄여주면 만족할 따름이다. 교사들은 연차가 높을수록, 특목고나 자사고보다는 일반고에서 근무할 때 학종을 지지하기 쉽다. 수능에 의해 의미가 사라졌던 ‘학교 수업’이 학종 도입 이후 ‘돌아왔다’는 평가다. 교사의 정성평가가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면서 업무량이 늘었지만 동시에 재량권도 생겼다는 평가다. 교육당국도 학종을 선호한다. 부모의 학력이나 소득에 따라 입시 결과가 벌어지는 것을 학종이 방어하고 있고 그래야 한다는 정책적 분석과 신념 때문이다. 실제 학종은 교육특구(강남, 서초, 송파, 양천 등)가 아닌 지역과 일반고 학생들이 성과를 많이 내는 전형이라는 분석 결과도 나온다.

대입 논란에서 빠져 있는 가장 중요한 주체는 바로 학생이다. 학생들은 한결같이 정시를 선호한다. 출신지역, 교육특구 여부, 출신학교와 상관없이 정시를 학종보다 선호한다. 수험생들의 학종에 대한 지지가 5점 만점에 2점 수준이라면, 정시에 대한 지지는 5점 만점에 4점 수준이다. 학생들이 정시를 지지하는 표면적인 이유는 ‘공정함’이다. 이쯤에서 많은 평론가들은 ‘신자유주의적 공정 이데올로기’가 10대와 20대를 잠식했다며 학생들을 은연중에 문제화시켜버리곤 한다. 그런데 수능과 정시에 대한 지지를 학생들의 성향으로 환원하는 것은 정당한 것일까? 아니 정확하기는 한 것일까?

학교에는 다양한 학생이 있다. 학업성취, 다양한 소질 외에 학교 교육에 대한 태도도 차이가 난다. 학종은 교사가 제시하는 것을 잘 따르고 경시대회나 동아리 활동, 비교과 활동을 잘 따라오는 학생, 즉 “선생님 말씀 잘 듣는 아이”에게 상을 주자는 취지다. 그런데 비상한 두뇌를 가졌으나 학교에서 제시하는 방식의 지도가 힘든 학생은? 교사의 지도에 잘 따르고 있지만 속으로는 불만인 학생은? 늦게 공부 욕심이 생겼는데 누적된 성과가 좋지 않아 입시에 대한 기대를 낮춰야 하는 학생은? 폭력에 지친 학생에게 학교가 충분히 응답하지 않는다면? 학생들의 학종에 대한 반감과 정시에 대한 지지는 학교 현장에서 학교 교육에 대한 정당성의 누수가 발생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학생들에게 정당성을 잃는 한 입시개혁 조치는 ‘꼰대’들의 학생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 그친다. 

학종과 정시 어떤 것을 택하더라도 최상위 대학의 입시전쟁을 막을 방법은 없다. 어느 나라든 최상위 대학에 가는 경쟁은 지옥이다. 학습 동기부여가 가장 잘된 학생들이 한정된 자리를 놓고 펼치는 경쟁이기 때문이다. 지역균등선발 등 제도 설계를 통해 약간의 완화는 가능하지만, 대학 전체를 평준화하거나 정원을 없애지 않는 이상 완벽한 해결은 불가능하다. 학종에 대한 몇몇 연구는 학종으로 인한 사교육비가 수능일 경우와 큰 차이가 없거나 더 많을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스카이캐슬’과 ‘수능 1타 강사’들의 위세를 교육당국이 입시제도를 통해 잡을 수 있다는 제도만능론을 버려야 한다.

교사와 교육행정가들이 학부모들과 더불어 입시에 대해 가타부타하는 와중에 놓치고 있는 건, 교육이 다수 학생들과 소외되는 학생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교육과정에서 학생들을 민주주의 사회의 주체로 어떻게 품어낼지에 대한 고민이 더 값질 것이다. 불공정을 말하는 학생들은 성적 경쟁의 불공정뿐만 아니라, 자신이 학교에서 부당하게 대우받는다는 것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학생 전체가 중등교육을 통해 사회에서 필요한 기초소양을 어떻게 높일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시민으로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시의적절하고 다양한 역량을 교육은 제공하고 있는가? 최상위권을 제외한 한 반 30명 중 6~25등의 배움과 성장이 교육 문제의 중심에 와야 할 것이다. 표면적 반응에 대증처방으로 대응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것은 없다.

입시에 대한 멋지고 공정한 설계는 교육정책 성공의 충분조건이 아니다.

<양승훈 경남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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