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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사회학과에서 문화사회학 같은 과목을 강의하고 싶은 적이 있었다. 급변하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이러저러한 현상의 다양한 맥락을 이론적 틀을 가지고 설명해주고, 되도록이면 개인들, 특히 소수자에 대한 꼬리표를 붙이지 않고 함께 시민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다양성에 대한 감수성을 갖출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강의. 컴퓨터 코드와 그래프, 바둑판 모양의 표만 보는 수업의 한계는 분명하다.

그럼에도 대학에서 통계와 통계프로그래밍을 가르치는 것은 흥미롭다. 수학을 싫어하거나 수학 때문에 고통받았던 학생들에 대해 사회학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계기이기 때문이다. 이따금 학생들에게 이원 연립일차방정식, 일원 이차방정식과 근의 공식, 함수, 수열, 행렬 등 간단한 수학 문제를 진단 차원에서 낸다. 많은 학생들은 중학교 2학년부터 고등학교 1학년 사이 어디쯤에서 정신을 잃고 시험지를 덮는다. 많은 학생들은 왜 이런 걸 사회학과에 진학해서 풀어야 하냐며 푸념한다. 중학교 때 영어 선생님이 들려준 “미적분 못해도 먹고사는 데 아무 지장 없다” 하던 이야기가 이따금 떠오른다. 나는 그 말과 싸운다.

강의의 목표는 70%가 따라오는 것이다. 먼저 사회조사통계. 숫자가 무서우면 손으로 그리면 된다. 줄기그림, 히스토그램, 상자 그림을 실컷 그렸다. 그래프가 이상하면 반복해 고치게 한다. 30명 남짓 학생들이 잘 따라하나 돌아다니며 봐주다 보면 한두 시간은 순식간에 ‘삭제’된다. 그래프를 그리다 보면 평균과 편차 등을 통해 설명되는 기술통계량을 자연히 익힐 수 있다. 중간고사 평균이 80점 이상 나왔다. 기말고사가 되니 몇 명이 길을 잃고 ‘멘붕’을 호소하지만, 문과 통계 수업의 어려움을 생각하면 절반 이상이 꾸역꾸역 끝까지 따라왔다는 데 의의를 두게 된다. 통계프로그래밍 수업은 피아노 레슨처럼 하려 한다. 교수를 따라 코드 몇 줄을 따라 치고 실행하다 보면 통계 시간에 손으로 그렸던 그래프가 나오고, 표가 나오고, 평균과 표준편차가 나온다. ‘빅데이터’도 몇 가지 작업을 통해 만져볼 수 있다. 

물론 거저 되는 것은 없다. 학생들은 끊임없이 “교수님!” 하고 소리를 지른다. “안돼요!” “이게 뭐예요?” 대개 학생들이 찾는 이유는 코드의 ‘오타’ 때문이다. 숫자 ‘1’과 소문자 ‘l’, 대문자 ‘I’를 바꿔 쓰거나, ‘e’와 ‘2’의 성조도 구분 못하는 서울 사람 발음 때문에 오타가 난다. 잽싸게 코드를 고쳐준다. 전산실에서 멀뚱멀뚱 앉아서 스마트폰 게임을 하거나 유튜브를 보는 학생들이 실습 시간에 교수를 찾게 하는 데도 굉장한 수준의 ‘라포’(신뢰관계) 형성이 필요하다. 그게 안되면 강단에서 프로그래밍 코드가 적힌 화면을 읽고 있는 것 말고 할 일이 없다.

학생들과의 스킨십은 강의실에서 그치지 않는다. 학생들에게 내주는 프로젝트 과제 때문이다. ‘예쁜(정돈된)’ 교육용 자료와 달리, 통계청과 정부의 공공데이터는 대개 뒤죽박죽이고 수많은 손질(전처리)을 해야만 한다. 학생들은 선배의 도움을 받지만, 안되는 게 많다. 면담 시간을 정해줘도 연구실 찾기를 주저하던 학생들은, 문자와 카톡으로 면담을 요청하기 시작한다. 물론 수업으로 높은 성과를 거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차적으로는 졸업하고 회사 가서 몇 가지 도구로 자료를 해석하고, 그래프 잘 읽고 쓰는 능력이면 족하다. 다음 단계는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대학에 온 지 3년째, ‘빅데이터 분석’을 직업으로 삼겠다고 덤비는 학생들도 생겼다. 통계가 좋다는 학생들도 생겨났다. 언젠가 썼듯 공대 수업을 수강하는 학생들이 늘었다. 작은 성공을 누적한 학생들은 조금 더 어려운 과업에 도전한다. 통계 수업에서 B학점을 받은 한 학생은, 공대 확률통계론 A+를 받고, 경영학과 통계 수업에서 1등을 했다고 자랑한다. 미적분학을 “재미있다”고 듣고, 선형대수학은 “이해가 빨리 안돼 좋은 성적은 포기했지만, 이걸 잘하면 빅데이터를 잘 만질 수 있을 것 같다”고 전한다. 첫 번에 이해 안된들 어떠랴. 세 번 들으면 할 수 있는 거였다. 세 번 들으면 할 수 있다고 학생에게 말해준 사람이 없을 따름이었다.

대학에 쓸데없이 너무 많이 간다는 등, 교육의 과정적 실패를 구조적인 고학력 사회의 모순으로 손쉽게 치환하는 사람들이 많다. 4차 산업혁명이 노동의 급진적인 변화를 만들어 낸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조차 때때로 그런 말을 한다. 자동화와 정보화로 인해 일자리가 열악해질 저숙련 노동을 ‘지켜달라’고만 할 뿐, 고작 10대에 공부에 서툴렀을 뿐인 학생들을 저숙련 노동 분야로 밀어내는 상황에는 문제의식이 별로 없다. 물론 공부를 좋아하지 않았거나 서툴렀던 사람의 배움이 ‘공부기계’의 배움과 ‘생산성’ 차원에서 차이가 날지 모른다. 그러나 노동시장이 요구하는 고등교육 수준 지식은 조금 더디더라도 달성이 가능하다. 지금 잘 안된다고 영영 안되거나 절대로 안될 일로 말할 수 없다. 다만 동기 부여와 효과적인 학습 수단을 제공하기 위해 조금 더 정성과 관심을 기울이고, 조금 늦은 배움을 하는 사람들이 노동시장에 잘 진입할 수 있게 하는 정책과 제도의 개선이 필요할 따름이다. 나는 ‘구조적으로’ 안된다고 비평하는 사람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쓰는 사람들의 편에 서고 싶다.

<양승훈 경남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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