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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내륙이나 러시아만 가도 평생 바다를 보지 못하고 죽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감사하게도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고, 마음먹으면 달려서라도 찾아가 바다를 껴안을 수 있다. 갯벌이 짓무른 눈시울 같은 남해와 서해, 망망대해 거치른 동해가 생김이 달라 신기한 지점이다. 나는 남녘 어촌에서 나고 자라 남해에 익숙해진 사람이다. 동해는 사철 깊고 사나운데 남해는 폭풍우 말고는 온순한 편이다. 이태준의 단편소설 <바다>는 북쪽 사람들의 어촌 풍경이 담겨 있다. 사투리가 생경하고도 재미지다. “야! 과연” “무스게라능야?” “멀기(함북 방언 물결. 아주 크고 거친 파도)말이오, 멀기. 과연 기차당이.” “무시거?” “멀기 말임둥. 과연 무섭지 앙이오?” 추위가 예사 추위가 아니고 바람도 곱빼기로 으르렁거릴 북녘에선 바다의 사나움이 대단할 것 같기도 하다.

어촌마을은 흩어져 지내는 산촌과는 사뭇 다른 모양새다. 옹기종기 모여 사는 동네의 촌장이 마을은 물론이고 폭풍우까지 다스린다. 용왕의 화를 재우고 바치는 쌀이나 목각 음경은 무조건 돈을 바치라는 서양신 신앙보다 관대하고 너그럽다. “무엇하러 당신들은 사제들을 임명하는가? 이미 당신들 가운데 사제들이 있는데.” 장 그르니에의 글을 읽다 밑줄을 친 부분이 맞는 소리렷다. 바람이 불어 횟감이 좋다는 어디로 따라갔는데, 오도독 씹은 회 한 점에 멀리서 오는 봄맛을 느꼈다. 동네의 촌장으로 보이는 횟집 주인은 일행과 알고 지내는 사이였는데, 담뿍담뿍 밑반찬들을 내다 주었다. 일본의 쩨쩨한 구두쇠 영감 ‘겐자히 아끼네’와는 ‘굉장히’ 다른 인심이었다. 아베 총리 또한 하는 말마다 아니꼽살스럽고 짠내가 진동한다. 입맛을 위해 그만 다른 생각을 하기로 하고, “가즈아~”·

갈무리를 하려는데 눈이 퍽퍽 내리기 시작했다. 바다에 갔던 배들이 뒷거둠질도 다 못하고 부두로 돌아오는 순간이었다. 여복도 많고 어복도 많은 촌장은 ‘멀기’를 뚫고 배를 모는 아들을 기다렸다. 부디 몸집만 한 방어를 잡아다주기를. 여들없는 아비와 달리 번개 같고 싹싹하던 그 아들을 나도 덩달아 기다리고 있었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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