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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 직업에 농사가 들지 않는 것은 의아하다. 겨울날 일이 끊겨 일절 돈이 나오지 않는 직업. 악으로 깡으로 버티고 견디기. 금전 줄이 말라붙어 결국 ‘나가너부러지게’ 되는 직업. 돌아오는 농촌, 귀농도 유행을 타서 효리네 민박처럼 산다면 또 모를 일. 골프나 테니스처럼 공을 잘 때려 상금을 딸 수도 없다. 딸기와 포도, 토마토 ‘공’은 농협 빚만 늘린다.

흘근번쩍거리는 대도시를 지나 어두컴컴한 도끼집들(도끼 하나로 허술하게 지은 집). 해 넘어가는 네다섯시만 되어도 길은 한가롭고 바람조차 썰렁해라. “할머니. 어디 가시나요?” “이런 써글 것이 있나. 젊은 거시 어른 헌티 어디 가시나라고? 그래 나 전라도 가시나다.” ‘헉~ 그런 말씀이 아니라… 어디 가시는지. 날이 추워 태워 드리려고.” “태워가꼬 어떠케 해볼라고? 니가 뒤지고 자프냐?” 뭐 이런 극지방 아재 개그가 생겨난 동네. 경운기도 다니고 탈곡기도 다니던 길. 찬바람만 씽씽 지나다니고 인기척이 드문 밤엔 부엉이들이 길가에서 홀짝홀짝 울어댄다.

시베리아에 정착한 고려인들은 ‘러시아 농민가’를 우리말로 불렀다지. “가난한 마을에 태어난 형제가 있었네. 험악한 세상을 만나 농부가 되었구나. 가난한 마을에 태어난 농부가 있었네. 악독한 지주를 만나 농노가 되었구나. 가난한 마을에 태어난 농노가 있었네. 악독한 지주랑 싸우다 전사가 되었구나.” 누군가 답가를 불렀다네. “나 태어나 이 강산에 농민이 되어 괭이 메고 삽질하기 어언 삼십년. 무엇을 하였느냐. 무엇을 바라느냐. 나 죽어 이 흙속에 묻히면 그만이지. 아~ 다시 못 올 흘러간 내 청춘. 푸른 옷에 실려간 꽃다운 이내 청춘.” 그러고 보니 삽질은 엠비 정권 때 농민들보다 곱절로 난리브루스였지. 덕분에 강은 썩어 문드러지고, 이용객이라곤 없는 수변공원 짓는다고 빼앗긴 서민들의 하천부지 좁쌀 논은 잡초만 무성해. 아수라장이 된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기 위해서, 다시 농사를 지어야지. 이 추위가 끝나면 전라도 경상도 가시나 머시마, 저 들에 씨를 뿌릴 테지. 괭이와 삽을 들고 농민가를 부르면서. “꽃피어 만발하고 활짝 개인 그날은… 이 땅의 농민들아. 손잡고 일어서자.”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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