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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인들에겐 예배 때 휴대폰을 꺼두라고 주의까지 줬는데 정작 자기 호주머니에서 전화벨이 울린 목사. 설교를 중단하고 강대상에서 전화를 받았다. “하나님! 지금 당신에 관해 한참 설교 중인데, 나중에 전화해요. 그럼 끊습니당. 뚝~” 누가 전화했는지 이거 뭐야 당황했겠다. 아무튼 하나님 개무시. 어설픈 회개와 영악한 간증. 적당히 죄를 사해주면 양심세탁비로 헌금을 받고, 아무나 집사고 장로 직분을 내려주는 하나님 없는 교회. 가난하고 억울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짓이기는 수억짜리 오르간과 성가대. 박수를 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방언 기도. 사랑이 없으면 하나님이 전화해도 들리지 않는, 그저 소음일 따름. 진실이 숨죽이고 소음만 있는 곳엔 하늘의 천사라도 누구 하나 내려앉을 수 없는 법이렷다.

산골엔 요즘 배고픈 참새들이 많이 내려앉는다. 갈대밭에 몸들 비비며 우는 갈대처럼 새들이 무리지어 밥 좀 나눠달라 애원들이다. 묵은쌀이 없나 한 됫박 찾아 바위에 올려놓고, 돌확에다간 물도 한 바가지 떠놨다. 논밭전지에 까마귀떼가 시꺼먼 구름마냥 내려앉기도 한다. 해마다 찾아오는 검은 날개 천사들.

이태준의 소설 <까마귀>는 친구 별장에 잠시 깃든 작가와 뜨락 정자에 가끔 방문하는 여자 이야기다. “여자는 잊어버린 듯 오래도록 햇볕만 쏘이고 있다가 어디선지 산새 한 마리가 날아와 가까운 나뭇가지에 앉는 것을 보더니 그제야 사뿐 발을 떼어놓았다.” 정자지기는 그 여자가 폐병에 걸려 요양 중인 환자라고 알려준다. “여기 나와선 까마귀가 내 친굽니다. 내 뒤를 쫓아다니는 무슨 음흉한 사내같이 소름이 끼쳐요. 아마 내가 죽으면 저 새가 덥석 날아와 앞을 설 것만 같이….” 몇차례 다담과 설렘이 오가고, 여자는 슬픈 미소만 남기고 내려갔다. 날이 추워지고 싸락눈이 내린 날, 잡지사에 글을 넘긴 작가는 영구차가 마을로 들어오는 것을 목격한다.

새들이 알아차린 진실과 베푸는 위로. 어쩌면 사람보다 나을 때가 있다. 배고픔을 던 새가 들려주는 합창은 바흐나 헨델의 코랄을 능가한다. 까마귀도 하늘을 덮으며 베토벤의 ‘운명’을 들려준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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