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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십대 초반의 그녀는 지난봄 회사에서 중요한 직책으로 승진했다. 열심히 일해서 얻은 정당한 성취였고 원했던 일이기에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최초의 기쁨이 지나가자 막다른 벽에 부딪친 듯한 마음 상태가 되었다. 다행히 그녀는 자기 성찰 능력이 있었기에 자기가 느끼는 막막한 감정이 일종의 불안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점은 그 불안의 근거가 없으며, 평소처럼 조절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나름대로 여러 가지 노력을 해본 듯했다. 그러다가 일면식도 없는 내게 메일을 보내왔다.

그녀처럼 승진 후 혼돈에 빠지는 여성을 더러 만난 일이 있다. 그녀들은 대체로 업무를 스마트하게 해내고, 조직 생활에 잘 적응해온 성격 좋은 이들이다. 상사나 사용자 입장에서 볼 때 믿음직한 부하 직원이었기에 그 자리까지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승진 후 관리자가 되면 이전과는 다른 태도를 보인다. 물론 남자도 승진하면 막중한 임무와 무거워진 책임감 앞에서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부하 직원을 관리·감독하는 일 자체를 불편해하지는 않는다. 세상을 수직적 경쟁 구조로 파악하는 남성들에게 그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세상을 수평적 평등 구조로 이해하는 여성들은 권력을 사용하는 일을 불편해한다. 타고난 특성도 아니고, 배운 적도 없는 역량을 한순간에 능숙하게 사용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승진한 여성이 혼란에 빠지는 지점은 바로 그곳이다. 그녀들은 그 자리까지 가는 동안 사용했던 역량과는 전혀 다른 것을 요구하는 업무 앞에서 어려움을 느낀다. 누구든 승진했다는 여성을 만나면 나는 이렇게 묻는다. “권력을 사용하기가 쉽지 않지요?” 그러면 그녀들은 다양한 속내 이야기를 들려준다. 부하 직원의 잘못을 지적하기 싫어 뒷수습을 직접 했다고, 업무를 지시할 때마다 내면에서 불편한 감정이 올라온다고, 아무래도 적성에 맞지 않아 사표를 써둔 상태라고. 내가 보기에 열 명의 여성 중 많아야 두 명 정도만이 권력을 잡았을 때 마음껏, 거침없이 사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나머지 80퍼센트의 여성은 혼란 상태에서 천천히 권력 사용법을 배워나가거나, 기어이 그것을 반납한다. 내게 메일을 보낸 여성도 같은 어려움을 안고 있었다.

권력 사용의 어려움 외에도 그녀는 또 한 가지 이상한 감정을 고백했다. 일종의 배신감, 허탈감 같은 걸 느낀다고 했다.

“나는 여기까지만 오면 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더 가라는 거죠. 그토록 열심히 일한 대가가 고작 이것인가, 하는 느낌이었어요.”

그녀는 스스로도 그 마음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전형적인 무의식의 목소리였다. 어렸을 때 부모의 인정과 사랑을 받기 위해 부모가 요구하는 일을 모두 해냈으나 늘 더 큰 요구만 받아온 사람의 내면 마음이었다. 좋은 성적표를 가져가면 따뜻한 포옹과 사랑의 말이 있을 거라 기대한 아이가 여전히 내면에 존재하는 거라고 말해주자 그녀는 눈물을 보였다. 아무리 좋은 성적을 받아도 칭찬은커녕 늘 다른 형제와 비교하던 부모에 대해 말했다.


▲ “여성 직장인들은 안으로 남성 조직에
적응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면서
밖으로는 그들의 트랙 안에 놓인
특별한 허들을 넘어야 한다.”

권력 사용법을 배워야 하는 점, 무의식의 인정 욕구가 현실을 잠식하는 것 외에도 여성의 사회생활을 어렵게 하는 요소가 한 가지 더 있다. 여성의 내면에 상징계가 잘 형성되어 있는 경우가 드물다는 점이다. 상징계란 의식 속에 형성되는 요소로서, 자신이 소속된 사회의 상징 체계를 이해하고, 사회에 편성되어 있는 관습과 제도를 수용하고, 사회의 규칙과 질서를 지키는 역량을 말한다. 상징계는 대여섯 살 무렵, 아버지가 지배하는 가정의 규칙과 질서에 순응하면서 만들어진다. 아들들은 아버지의 말에 순응하고 아버지와 잘 지내는 법을 익히는 과정에서 절로 상징계가 만들어진다. 하지만 딸은 아버지의 권력에 복종하기보다는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싶어한다. 성인이 되어 사회생활을 할 때면 권력자의 말에 복종하기보다는 그의 마음에 들고 싶어하는 태도를 보인다.

상징계의 부재, 현실의 냉정한 질서와 규칙에 대한 인식 결여는 여성의 맹점처럼 보인다. 사적인 삶의 영역에서는 문제되지 않지만 직장에 들어가면 바로 그 지점에서 저항감을 느낀다. 갓 사회생활을 시작한 여성들이 어려움을 호소할 때 사용하는 관용구 중에 “세상이 내 맘 같지 않아요”라는 게 있다. 세상이 어땠으면 좋겠느냐고 물어보면 서슴없이 이렇게 답한다. “온정적이고 평등하고 안전하고 배려하는….” 그런 세상은 본인의 환상일 뿐, 현실의 실체가 아니지 않으냐고 물으면 “그래서 내가 세상을 바꿀 거예요”라고 대답한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라도 먼저 세상에 대한 그 환상을 버려야 한다. 눈앞의 냉혹한 현실을 수용하고, 그곳에 적응하고, 그 안에서 힘을 얻어야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냐고 물으면 두 가지 태도가 돌아온다. 아프게 그 말을 수용하거나, 비겁한 타협의 언어로 치부하거나.

여성의 사회생활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양성평등을 말하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남성의 법칙으로 움직이는 남성 중심 사회이며 여성이 그 속에서 일하기 시작한 지 채 100년도 되지 않았다. 남다른 공감 능력, 수평적 관계 맺기, 돌보는 기능 등을 여성 리더십의 특성이라고 칭송하지만 그것은 여성에 대한 편견이 적은 사회에서나 통용되는 자질이 아닐까 싶다. 여성 직장인들은 안으로 남성 조직에 적응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면서 밖으로는 그들의 트랙 안에 놓인 특별한 허들을 넘어야 한다.

남자들은 여성이 일에서 평등하기를 바라면서도 동료가 아닌 여자로 바라보기 좋아한다. 예쁜 여자는 착할 뿐 아니라 유능하다고 믿고 싶어한다. 여성 상사가 부임해와도 우선 “예뻐?” 하고 묻는다. 또 하나의 허들은 남성 우월감에서 비롯되는 편견의 시선을 받아내야 한다는 점이다. 남자가 화를 내면 당연한 일로 여기면서 여자가 화를 내면 감정 조절을 못한다고 평가한다. 남자가 침묵하면 깊은 숙고에 들어갔다고 여기고 여자가 침묵하면 토라져서 말이 없다고 평가한다. 무엇보다 남자들은 결코 여자가 권력을 갖기를 원하지 않는다. 위험한 자리, 끝이 빤히 보이는 자리가 아니면 여자에게 내어주지 않는다. 그런 자리에서라도 여자가 오래 머무를까봐 간간이 흔들기를 멈추지 않는다.


김형경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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