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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노인 ‘우공’은 집 앞을 가로막은 태행산과 왕악산 때문에 답답했다. 산을 깎아내리기로 결심한 우공은 온 가족과 함께 산을 옮기는 공사에 착수했다. 이웃들이 비웃자 우공이 말했다. “내가 죽으면 아들이 나서고, 아들이 죽으면 손자가 나서서 할 것이다. 자자손손 계속 깎으면 언젠가는 평평하지 않겠는가.” 이 말을 들은 산신은 놀라서 두 산을 멀리 옮겨버렸다. <열자>에 나오는 ‘우공이산’ 이야기다. 중국인들은 꾸준함, 인내의 상징으로 즐겨 인용한다. 마오쩌둥은 이 고사를 들어 홍군의 항일전쟁을 독려했다고 한다. 화가 쉬페이훙은 이 고사를 대형 유화로 그려냈다. 이 그림은 중국국가박물관의 로비 벽에 부조로 새겨져 있다.

오는 16일이면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한 지 꼭 10년이 된다. 시대의 ‘큰어른’이었던 김 추기경의 빈자리는 쉽게 메워지지 않았다.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김 추기경의 정신적 유산을 이어가기 위한 다양한 행사를 준비한다. 사진은 2010년 2월3일 선종 1주기를 기념해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열린 추모사진전의 모습. 연합뉴스

톨스토이 단편 ‘바보 이반’의 주인공 이반은 군인과 장사꾼인 두 형과 달리 이익과 출세에는 관심이 없다. 그는 착하고 성실하고 근면했다. 우애심도 깊어 가정이 화목했다. 이를 시기한 악마가 형제들을 불행에 빠뜨리려 하지만, 이반은 악마의 유혹에 빠지지 않았다. 오히려 악마가 이반의 바보 같은 삶에 감화를 받는다. 이반은 마침내 악마에게서 얻은 만병통치약으로 공주를 구하고 왕위에 오른다. 러시아 민담에서 유래한 이반의 이야기는 눈앞의 이익과 쾌락을 버리고 성실히 자신의 일을 수행하는 삶이 행복에 더 가깝다는 진리를 일깨워준다.

고 김수환 추기경도 ‘바보’였다. 성직자로서 교회 안에서 편안하게 보낼 수 있었지만, 어려운 길을 택했다. 평생을 노동자, 빈민, 농민과 함께했다. 대통령에게 직언도 서슴지 않았다. 2007년 8월, 김 추기경은 동성중·고 개교 100주년 기념전에 한 그림을 출품했다. 크레파스로 얼굴을 그린 뒤 아래 여백에는 ‘바보야’라고 썼다. 자화상이었다. 이후 ‘바보’는 추기경의 별명이 되었다. 김 추기경은 이에 대해 “하느님은 위대하시고 사랑과 진실 그 자체인 것을 잘 알면서도, 마음 깊이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총명하게 사는 일은 어렵다. 난득호도(難得糊塗). ‘바보’의 삶은 더 어렵다. 노자는 “커다란 지혜는 어리석음과 같다(大智若愚)”고 했다. 오는 16일은 ‘바보 성자’ 김수환 추기경의 10주기다. 그의 큰 빈자리를 ‘바보의 나눔재단’이 채워가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조운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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