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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칼럼

[여적]‘NY’ 이낙연

opinionX 2020. 2. 3. 10:48

백범(김구) 우남(이승만) 해공(신익희) 인촌(김성수) 유석(조병옥) 죽산(조봉암) 해위(윤보선)…. 1960년대까지는 거물 정치인들은 아호(雅號)로 불렸다. 이름을 부르는 건 불경으로 여겨, 품위도 있고 예우의 뜻이 담긴 아호로 통칭된 것이다.

1970년대 들어 영문 이니셜 호칭이 등장했다. 원조는 박정희 정권의 2인자였던 김종필이다. 미국 케네디 대통령의 애칭 ‘JFK’를 원용해 ‘JP’라는 약칭이 만들어졌다. DJ(김대중)·YS(김영삼) 등장은 결을 달리한다. 독재 시절 탄압받는 인물을 부르는 은어로 시작해 국민적 열망을 담은 애칭으로 자리잡았다. ‘3김’을 거치면서 이니셜로 불리는 것 자체가 한 시대를 풍미한 ‘거대한 정치’를 상징하게 된다.

‘3김 이후’ 대선주자들은 끊임없이 영문 약칭의 호명을 꾀했다. 1992년 대선에 출마한 정주영은 경쟁자인 YS나 DJ처럼 자신을 ‘CY’로 불러달라고 요청했으나 통용되지 못했다. 이회창은 HC, 정동영은 DY, 정몽준은 MJ, 김근태는 GT, 손학규는 HQ, 박근혜는 GH를 내세웠으나 실패했다. 시대가 바뀐 이유가 크겠지만, ‘3김’과 비견되는 정치력과 대중성을 얻지 못한 탓도 있을 것이다. 그나마 영문 약칭이 통용된 것은 MB(이명박)다. 불명예스러운 ‘2MB’ 별명이 큰 역할을 했다.

언어적으로 영어 약칭의 성공 조건을 탐색한 연구도 있다(채서영 ‘JP, YS, DJ-영어 두문자 약칭’). 논문에 따르면 영어 두문자(頭文字) 약칭은 3음절이어야 하고, H·W·C 등이 없어야 성공할 수 있다. 3음절 이상 글자가 들어갈 경우 발음이 어렵고 어감도 좋지 않아 통용되기 어렵다. C는 발음상 ‘0씨’로 들리는 게 약점이다. HC, HQ, GH 등이 예로 꼽힌다.

오랜만에 ‘이니셜 마케팅’에 도전(?)하는 정치인이 등장했다. 차기 대선후보 지지율 선두를 달리고 있는 이낙연 전 총리다. “NY로 불러달라.” 앞서 연구논문을 적용하면 NY는 3음절이고 발음이 어려운 이니셜이 없다. 이 전 총리 측은 “발음하기 편해 입에 착 붙는다”고 한다. ‘I♥NY(뉴욕)’로 친숙하다는 점도 고려한 눈치다. NY 네이밍의 성공은 소통과 함께 대세론을 유지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대중의 성원과 사랑을 얻지 못하면, NY는 ‘이낙연’이 아니라 계속해서 ‘뉴욕’으로 호명될 것이다.

<양권모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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