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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기생충>은 빈부격차로 인한 계층 간 갈등이 기본 얼개다. 영화는 부익부 빈익빈으로 치닫는 한국 사회를 겨냥한다. 가난한 ‘기택’(송강호)은 치킨집과 카스텔라가게를 운영하다 망한 실업자 신세다. 대학에 실패한 아들, 딸을 포함해 가족 전원이 백수인 그는 가난한 동네의 반지하방에서 산다. 반면 잘나가는 벤처기업의 대표 ‘박 사장’(이선균)의 집은 언덕 위 대저택이다. 계단을 올라가야 현관문이 나오고 또다시 계단을 올라가야 거실이 나온다. 거실 밖으로는 너른 잔디 정원이 펼쳐진다. 영화는 빈부격차를 수직적 이미지로 보여준다. 높은 곳에서 유유자적하는 부자와 낮은 곳에서 바둥대는 빈자의 대비다.
영화 <기생충>에 등장하는 기택네는 식구들이 모두 ‘백수’로 피자 박스 접기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간다. 아들 기우(최우식)와 아빠 기택(송강호), 엄마 충숙(장혜진), 딸 기정(박소담·왼쪽부터)이 반지하집에 함께 있는 영화 중 한 장면. CJ엔터테인먼트 제공
기택의 반지하방에 걸려 있는 액자 글씨는 ‘안분지족(安分知足)’이다. 가난에 순응하던 기택은 자신을 포함한 백수 가족 전원이 박 사장집에 취업하면서 자신의 존재에 눈을 뜬다. 박 사장은 가장의 역할에 충실하고, 기사나 가정부에게도 예의를 차리는 회사 CEO다. 그런 그가 ‘지하철 냄새’가 난다며 무심코 내뱉는 말에 ‘반지하 생활자’ 기택은 계급적 정체성을 인식한다.
계급 갈등 또는 계층 간 충돌은 평상시 잘 드러나지 않는다. 봉준호 감독은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은 동선이 겹치지 않기 때문에 서로의 냄새를 맡을 기회가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부자들은 높은 저택, 기사 딸린 자가용, 퍼스트클래스 등을 이용하며 자기들만의 세계에서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만의 리그’란 없다. 세상은 거울 속에 거울이 끊임없이 이어져 서로를 비추는 ‘인드라망’이기 때문이다. 부자는 빈자의 거울이고 빈자 역시 부자의 거울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일 발표한 사회갈등 인식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85%는 ‘한국의 소득격차가 너무 크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80%는 ‘인생에서 성공하는 데 부유한 집안이 중요하다’고 여기고 있었다. 극심한 빈부격차와 불평등은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라 눈앞의 현실이다.
<조운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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