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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에서 깨작거리는 사람에게 “고기는 씹어야 맛이지~” 하며 잇몸 약을 추천합니다. 그 약 먹고 나서 고기 씹으며 외칩니다. “씹으니까 속이 다 시원하네!” 흔히 쓰는 말 ‘고기는 씹어야 맛이다’가 있습니다. 이 말은 속담 ‘고기는 씹어야 맛이고 말은 해야 맛이다’가 줄어든 것입니다. 찢어지게 가난하게 살던 시절에 고기 먹을 귀한 수가 생긴다면 행여 뺏길세라 허겁지겁 제대로 씹지도 않고 꿀떡꿀떡 삼켰겠지요. 그렇게 먹으면 육즙도 그 귀한 고기 맛도 모르는데.

“저기…” “응? 뭐.” “어…” “뭔데?” “그게…” “뭔데 그래.” “아니야.” “어휴, 속 터져! 말할 거면 하고 아님 말든가!” “미안, 나중에.” 이쯤 되면 애써 귀 열어준 사람은 속으로 가슴 쾅쾅, 미치고 팔짝 뜁니다. 입술 옴질거리지 말고 고기 씹듯 팍팍 입 운동 좀 해줬으면 속이 다 시원하겠네요. 할 말이든 못할 말이든, 일단 한마디라도 툭 내뱉어주면 미적지근한 시작이라도 말길은 터줄 텐데 말이죠. 심각한 표정으로 운 띄워놓고 “아냐 됐어” 해버리면 이건 갑갑해서 죽을 맛 아닌가요? 그럴 거면 말부리나 떼지 말 것이지 귓구멍 감질나게 해놓고 목구멍 닫아버리면 어쩌란 건가요. 고민이면 고민, 비밀이면 비밀, 서운하면 서운하다, 싫으면 싫다, 운 하나에 기본 한 소절씩은 읊어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꾸 말 흐리면 다른 데서 상상과 오해와 밥맛으로 씹힙니다. 말 꺼내고 도로 삼킬 거면 상대방 복장 터지게 말고 혼자 답답하세요. 말하기 힘들면 종잇장 깔고 낙서하십시오. 썼다 지웠다 붓방아에 손톱 씹고 한숨으로 가위표 북북 긋든 말든, 일단 손톱만큼이라도 말거리 마련하고 운 떼십시오. 말 꺼내려다 목구멍 막히는 건 첫마디를 어떻게 꺼내야 할지 몰라서입니다. 자기가 못 낸 답은 누구한테 말하든, 결론은 어차피 랜덤입니다.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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