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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건물이나 관공서에 개인 이름을 붙이는 경우가 있다. 서울대 호암교수회관의 ‘호암’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할아버지인 이병철 삼성그룹 선대회장의 호다. 국내 최고 의료기관 중 한 곳인 서울아산병원에는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의 호(아산)가 들어 있다. 설립자에게 감사를 표하고 그의 뜻을 기리기 위함일 것이다. 서울대 경영대 ‘SK관’이나 수원시의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처럼 근래에는 기업명이나 상품(아파트) 브랜드가 노골적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상업성이 다분하지만 대기업 부의 사회 환원 차원으로 볼 수 있다.
드물지만 설립자도 기부자도 아닌 사람의 이름이 관공서를 장식하는 사례가 있다. 지난달 21일 외교부 산하 국립외교원에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이름을 딴 강의실이 만들어졌다. 외교관 후보생들의 수업이 진행되는 제1강의실을 ‘반기문 기념 강의실’로 명명하고 강의실 입구에 반 전 총장의 사진 등을 붙인 것이다. 국제무대에서 한국을 대표할 예비 외교관들에게 반 전 총장을 롤 모델로 삼으라는 취지이다. 지난해 광주보훈청은 호국영웅 고 성관식 소령의 이름을 따 광주지방합동청사 대강당에 ‘성관식실’ 표지를 달았다. 광주 출신인 성 소령은 6·25 때 공을 세우고 해병 항공대 창설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다 불의의 사고로 절명했다.
기획재정부에는 3일 ‘익(翊)실’이 생겼다. ‘익실’은 정부세종청사 4동 4층 국제금융정책국 회의실의 새 이름이다. 지난 2월 5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김익주(金翊柱) 전 국제금융센터 원장의 이름을 땄다. 중앙부처에서 공무원 이름을 딴 공간이 마련된 것은 처음이다. 이날 기재부는 김 전 원장 추모식도 열었다. 행정고시 수석이면서도 늘 겸손했던 그는 기재부 후배 직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투표에서 ‘가장 존경하는 상사’로 뽑히기도 했다.
탁월한 업무 능력과 성과에도 그는 공을 앞세우지 않기로 유명했고, 지인들에게 암 투병 사실조차 숨긴 채 모진 시간을 보내다 지난 2월1일 숨졌다. 갑작스러운 환율·금리 변동이나 외국인의 자금 유출로 금융시장이 요동칠 때마다 당국이 꺼내드는 이른바 ‘거시건전성 3종 세트’를 만든 주인공이 그다. 고인의 영면을 기원한다.
오창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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