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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여적]김여정과 재떨이

opinionX 2019. 3. 4. 14:11

-2019년 3월1일자 지면기사-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의 한 장면. 광해군이 침전에서 안절부절못한다. 이틀간 측간을 가지 못했다고 하니 배탈이 난 게 틀림없다. 배에서는 간혹 물 끓는 소리가 나고, 아랫다리 쪽에서는 풍선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린다. 내시에게 말하자 매화틀이 침전으로 들어온다. 엉거주춤 매화틀에 앉은 광해는 시원한 소리와 함께 ‘거사’를 끝낸다. 곧이어 이를 지켜보던 궁중 나인들의 입에서 ‘경하 드리옵니다’라는 축송이 침전에 메아리친다.

매화틀은 나무로 만든 왕의 이동용 좌변기다. 나무틀 위에는 빨간 우단을 깔았고 틀 밑에는 서랍식 구리그릇이 놓였다. 매화틀은 왕의 분뇨를 매화라고 은유한 데서 비롯된 말이다. 왕이 일을 보고나면 구리 변기를 꺼내어 이를 내의원에 보낸다. 내의원에서는 변의 농도와 색깔 등을 살핀다. 심지어 맛까지 보면서 왕의 건강 상태를 점검했다. 분변이 건강과 직결된 만큼 나인들이 왕의 쾌변을 축하한 것을 영화적 과장이라고만 말할 수 없다.

김 위원장이 담배를 피우는 동안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이 두 손으로 재떨이를 받쳐든 모습. (출처:경향신문DB)

신체에서 분비되는 땀이나 눈물, 대소변은 건강과 관련된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 이들 생체정보를 이용한 진단기술도 진보했다. 변의 색깔과 냄새로 병의 징후를 감지하는 수준을 넘어선 지 오래다. 분변에 들어 있는 체액의 유전자(DNA)를 통해 암 등 건강상태를 진단할 수 있다. 나아가 암세포가 깨지면서 생기는 미량의 DNA 조각을 사람의 혈액이나 분변 등에서 찾아 암을 진단하는 수준까지 와 있다. 미국의 유명 여배우 앤젤리나 졸리는 유전자 분석검사를 통해 유방암 가족력을 발견했고 이를 사전에 막기 위해 절개수술을 받은 바 있다. 우리 주변에서도 DNA 검진을 통해 치매나 성인병 위험을 사전에 체크할 수 있다.

지난 26일 새벽 흥미로운 광경이 목격됐다. 북·미 정상회담을 위해 베트남을 방문한 김정은 위원장이 열차에서 내려 담배를 피우자 재떨이를 들고 있던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담배꽁초를 곧바로 챙겨간 것이다. 북측은 김 위원장의 콧물을 닦은 휴지나 수건, 머리카락, 대소변은 밀봉해 특수처리하거나 회수해 가져간다. 김 위원장의 DNA 정보를 유출하지 않기 위해서다. 건강이상설까지 나온 바 있는 김 위원장의 생체정보는 북측의 1급기밀이 아닐 수 없다.

<박종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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