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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1일자 지면기사-

오늘은 3·1운동이 일어난 지 100년이 되는 날이다. 1919년 3월1일 서울·평양·진남포·안주·의주·선천·원산 등 7대 도시에서 만세시위가 벌어졌다. 끝이 아니었다. 운동은 3월 한 달 내내 전국을 휩쓸고, 5월까지 국내외에서 계속됐다. 참가자 200여만명.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거족적 민족운동이었다.

3·1운동은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었다. 고종의 죽음은 3·1운동을 촉발시킨 계기가 됐다. 그러나 3·1독립선언서는 군주가 아닌 조선인을 나라의 주인이라고 못 박았다. 만세운동이 확산되면서 군주는 잊혔다. 복벽주의 이념도 사라졌다. 1919년 4월11일 상해임시정부는 의정원 임시헌장 제1조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라고 명시했다. 임시정부는 여성에게도 보통선거권을 부여했다. 제국의 시대가 가고 민주공화국 시대가 도래했다. 이후 민주공화국은 확고한 정치 이념으로 자리 잡았다.

3·1운동과 이어지는 독립운동은 자율, 독립, 배려, 평화, 연대 정신을 싹틔웠다. 한국인들은 근대에 눈을 떴다. 민주주의 가치를 발견하고 내면화하기 시작했다. 독립운동은 주권 회복운동이면서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이었다. 그러나 한국의 근대는 출발지점에서 좌절해야만 했다. 일제의 강압통치는 한국의 자생적 근대를 짓밟으며 식민지 근대를 이식했다. 타율성, 의존성, 패배주의, 냉소주의가 그것이다. 해방 이후의 민족분단은 식민지성을 고착화시켰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1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제100주년 3.1절 기념식’에 참석하여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부르고 있다. 강윤중 기자

100년이 흘렀다. 정부는 일찌감치 ‘3·1운동 및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사업회’를 꾸렸다. 독립운동가 사전과 열전을 발간하고 3·1운동 기록의 유네스코 등재를 추진 중이다. 여성 독립지사 등 묻혀 있던 독립유공자 발굴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임시정부100주년기념관이 건립되고 임정수립일(4·11)의 임시공휴일 지정도 검토되고 있다. 언론은 연일 3·1운동과 임시정부 관련 소식을 쏟아내고 있다. 의미 있는 사업들이 착수 중이다. 그러나 기념사업이 과거 사건에 대한 재현과 학습에 그쳐서는 안된다. 진정한 기억과 기념은 ‘지금 이곳’의 현실을 극복하는 동력을 찾는 일이다.

100년을 맞아 3·1운동의 의미를 다시 읽어야 한다. 100년 전 싹튼 한국의 근대는 여전히 미완성이다. 해방된 지 반세기를 훌쩍 넘겼지만, 친일 잔재는 사회 곳곳에 남아 있다. 갑질, 폭력, 무사안일, 타율성은 떨쳐야 할 식민 잔재이다. 분단은 여전하고 냉전의 기류도 걷히지 않았다. 내부의 이념적 분열은 미래 발전을 거부한다. 3·1정신으로 우리 안의 식민지성을 청산하고 성숙한 시민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민족이 깨어나고 세계가 다시 태어나야 한다. 역사의 요청에 부응하기 위해 100년 전 연대와 통합, 공존과 평화의 가치를 되살려야 한다. 3·1운동이 근대의 시작이었다면, 100년은 근대를 완성하고 새로운 미래를 모색하는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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