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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여적]남산 개구리

opinionX 2020. 1. 13. 10:29

24절기 모든 명칭이 최초로 기록된 문헌은 기원전 139년 중국 전한 대 류안이 저술한 ‘회남자’로 알려져 있다. 회남자는 중국 최초의 공식 반포력인 태초력에 채택된 이래 모든 역법의 기준이 됐다.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에 도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중국의 24절기는 화북지방을 기준으로 했기에 우리와 맞지 않았다. 1444년 세종은 이순지와 김담에게 원나라에서 만든 수시력의 해설서를 편찬토록 했다. ‘칠정산내편’은 수시력을 기초로 조선의 수도인 한양의 북극고도에 맞게 개량한 것이다. 역법 개발은 농업국가의 최우선 국책사업이었다.

지난 9일 서울 남산 중턱 자락에서 산개구리 한 쌍이 포접 중인 모습. 시민과학자 조수정씨 제공

경칩(驚蟄)은 동지로부터 72일 지난 날이다. 양력으로는 3월5일 또는 3월6일이다. 날씨가 따뜻하여 각종 초목의 싹이 트고 겨울잠을 자던 동물들이 땅 위로 나오려고 꿈틀거리는 날이다. 당초 중국의 한서에는 ‘열 계’와 ‘겨울잠 자는 벌레 칩’자를 써서 계칩(啓蟄)이라고 기록돼 있다. 나중에 한무제의 이름인 ‘계’자를 피하기 위해(피휘·避諱) ‘놀랄 경’자를 써서 경칩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우수와 경칩이 지나면 대동강물이 풀린다고 한다. 완연한 봄을 알려주는 전령이다.

지난 9일 서울 남산에서 포접 중인 산개구리가 관찰됐다. 포접이란 산란을 위해 몸을 포개는 것을 말한다. 보통 포접한 지 수시간~수일 이내에 알을 낳는다. 개구리는 보통 1월 말~3월 초 사이에 남쪽 지방부터 활동하기 시작한다. 서울에서는 보통 2월에 관찰됐던 관례에 비추어 한 달 정도 앞선 것이다. 국립공원공단은 “겨울이 따뜻한 데다 전국적으로 비가 와 개구리들이 겨울잠에서 일찍 깬 것 같다”고 했다. 실제 올해 기온은 평년보다 10도 이상 높았고 많은 누적 강수량을 기록했다. 기후온난화의 결과라는 말도 나온다.

개구리가 너무 일찍 잠에서 깬 것은 좋을 것이 없다. 계절을 앞질러 알을 낳으면 다시 한파가 왔을 때 집단동사할 가능성이 높다. 개구리만 빨리 잠자리에서 나와서는 먹이원의 생물시계에 맞출 수도 없다. ‘철을 모른다’는 것은 지금이 어느 때인지 무엇을 할 때인지를 모른다는 말이다. 계절·절기를 모르는 것을 일러 철부지라고도 한다. 한 치 앞을 보지 못하는 게 인간사다. 때를 안다는 것은 어렵다.

<박종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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