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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슬프지만 10년 이상 가족과 함께 울고 웃던 어느 보이밴드 팬을 그만두고 얼마 전 BTS에 ‘입덕’했다. 작년 말 서울의 BTS 팝업 스토어와 올해 초 런던 BTS 포럼 줄에 서 있는 동안 과거에 대한 슬픔과 미래에 대한 행복감이 교차했다. 백발이 섞인 중년 남성이 어린 팬들의 긴 줄에 서 있는 건 좀 곤혹스럽다. 다행히 한국에서는 아내가 몇 시간의 긴 줄에 동반해주는 덕분에 뼛속까지 파고드는 날씨와 당혹감을 극복할 수 있었다. 촛불 때도 그랬다. 역시 가족이 최고이다. 난 지나치게 가족의 가치를 절하하고 공적 영역만을 강조한 철학자 해나 아렌트에 좀 불만이다. 가족은 <동백꽃 필 무렵>의 대사처럼 때로는 서로에게 전환적 기적일 수 있다. 그리고 런던에서 BTS를 사랑하는 학자 ‘아미’들끼리 확대된 가족 공동체의 사랑과 우정을 듬뿍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아렌트의 우려는 정당하다. 우리는 불안하면 공적 영역에서 후퇴해서 가족이나 폐쇄적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의 달팽이 껍질 속으로 움츠러들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2020년도 여전히 불안사회이다. TV를 틀면 남한 크기만 한 면적을 태운 호주의 비극적 산불 소식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세계는 도래한 기후위기에 대해 긴급 공동 대응을 해도 이미 너무 늦었을지 모르는데, 어이없게도 ‘화염과 분노’ ‘분열과 거부’의 정치가 스멀스멀 살아나고 있다.

하지만 나는 나를 믿는다. 내가 우울하게 전망한 미래는 항상 틀렸다는 점에서 일관되기 때문이다. 촛불이 발생할 가능성을 제로로 보았고, BTS가 한류 스타에서 21세기의 밥 딜런이 될 줄도 예상하지 못했다. 다가오는 총선과 디플레이션에서도 나의 일관성을 믿는다.

어쩌면 내가 자꾸 틀리는 이유 중 하나는 대한민국의 유달리 강한 ‘퀀텀 에너지(Quantum Energy)’를 간과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혹시 이 글을 보는 물리학자가 있다면 볼멘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하다. 요즘에는 아무 데나 양자역학을 갖다 붙인다고 말이다. 하지만 며칠 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IT 산업 전시회에서의 양자 컴퓨터 세션에 구름처럼 모인 사람들을 보면 이제 퀀텀의 대중화 시대가 열린 것 같다. 사실 나로서는 과거 월드컵 4강, 촛불, 그리고 최근 BTS 기적에 이르기까지 ‘퀀텀 에너지’ 외에 다른 적절한 표현을 찾지 못했다. 최근 물리학과 경영학을 결합하려는 일부 학자들은 양자역학의 특성인 그 경이로운 역동성, 광대한 연결감, 모든 이분법의 타파, 초월적인 에너지를 적극적으로 사회과학 개념으로 수용하려 노력하고 있다. 

온몸과 영혼으로 노래하는 BTS의 연기는 그저 칼군무 이상의 빛나는 역동성을 보여준다. 가사 메시지와 아미 간의 깊고 확장된 연결망은 또 어떠한가? 젠더, 인종, 국적 등을 다 넘어서는 탈이분법은 마치 파동과 입자 경계 파괴의 양자역학을 연상시킨다. 협소한 자아를 초월하여 우주의 광대한 에너지와 연결하고자 하는 태도는 과거 68혁명 영성의 예술혁명가인 밥 딜런을 연상시킨다. 그래서 나는 런던포럼에서 BTS는 촛불혁명의 밥 딜런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그런데 기이하게 한국은 이 에너지가 높은 리더십 레벨로 갈수록 꼭 사라지고 만다. 올해 불안사회에서 희망사회로 전환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할 수도 있다. 즉 월드컵, 촛불, BTS의 성공 방정식인 퀀텀 에너지에 우리를 과감히 내맡기는 것이다. 반면에 정부, 기업, NGO, 교육기관의 리더십은 전략을 주도하지 말고 이 에너지의 흐름을 타면서 겸손하고 지혜로운 집행을 담당했으면 좋겠다. 마치 히딩크 감독, 촛불 집행부, 그리고 방시혁처럼 말이다. ‘전략은 집단지성이, 전술은 엘리트가’라는 안토니오 네그리의 도발적 테제는 한국에서 가장 잘 작동할 수 있다. 아래로부터의 에너지를 수용하면서도 장기적 지혜를 가진 전술의 집행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물론 리더십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이를 자각하고 적극 변화할 가능성이 별로 없다는 것도 잘 안다. 그걸 안다면 지금 이 교착상태가 아닐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실망할 일은 아니다. 우리 개개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이 광대한 에너지는 우리의 몸을 통해 이미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우리 각각이 ‘2020년 올해 새로운 시작을 할 마음이 있는가’일 뿐이다. 다시 아렌트를 소환한다면 인간의 가장 위대함은 부단한 탄생을 통해 다시 시작하는 능력이다. 이 탄생성은 불가능과 초월의 기적을 만들어낸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의 말처럼 올해부터 몇 년간은 인류의 미래를 위한 마지막 전환점인지 모른다. 우리는 이제 새로이 시작해야 한다. 우리 가족이 사랑했던 그 보이밴드도 BTS처럼 계속 성숙해가길 기원한다. 어쩌면 우린 모두 BTS와 아미이다.

<안병진 |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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