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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여적]돼지 키메라

opinionX 2016. 6. 8. 13:00

영화 <네버 렛미고>는 인간의 극단적 이기주의를 고발한다. 복제인간 아이들을 기른 뒤 장기를 떼내 이식한다는 섬뜩한 내용이다. 몇번 장기 이식을 한 아이는 목숨을 잃는다. 복제된 아이들도 영혼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려고 그들의 그림과 시를 미술관으로 보내지만 철저히 외면당한다. 그들은 인간의 건강과 수명을 위해 사육되는 한낱 동물이었을 뿐이다.

난치병 연구의 주요 실험동물인 돼지도 영화 속 복제 인간 아이들과 처지가 비슷하다. 돼지 DNA 분석 결과 원숭이보다 인간에 더 가깝다거나 인류의 기원을 원숭이와 돼지의 교배에서 찾는 학자도 등장했다. 하지만 이 같은 과학적 발견이 돼지의 지위를 향상시키지는 못했다. 돼지는 여전히 동물 단백질 공급원 이상도 이하도 아닌 존재다. 학대 수준의 공장식 사육 신세나 면한다면 다행일 터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파블로 교수 연구팀은 인간과 돼지의 유전형질을 결합한 ‘키메라 배아’를 돼지 자궁에서 키워 인공장기를 만드는 연구를 하고 있다고 한다. 당뇨병 환자에게 필요한 췌장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돼지 배아에서 췌장을 만드는 유전자 부위를 잘라낸 뒤 여기에 인간의 유도만능줄기세포를 주입, 자궁에 착상시켜 인간의 췌장을 자라게 한다는 것이다. 키메라는 사자의 몸과 양의 뿔, 뱀의 꼬리를 가진 그리스 신화 속 괴물이며, 키메라 배아는 서로 다른 종의 유전자로 만들어진 하나의 개체를 의미한다. 신의 영역에 대한 도전인 것이다.


동물자유연대 회원들이 27일 서울 광화문역 앞에서 공장식 축산으로 고통받는 돼지의 현실을 고발하고, 인간에게 되돌아오는 문제점을 지적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_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인간과 동물의 혼합 배아 연구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유도만능줄기세포를 사용한다는 게 다를 뿐이다. 이 세포는 성인의 체세포를 조작해 세포 생성 초기의 만능세포 단계로 되돌린 것이다. 하지만 이 연구에는 결정적 위험성이 존재한다. 이 세포가 자칫 돼지의 다른 기관, 예컨대 뇌로 갈 경우 인간의 두뇌를 가진 돼지가 태어날 수도 있다. 인간과 유사한 의식체계를 가진 돼지의 탄생은 종의 경계가 붕괴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류는 아직 반인반수라는 전대미문의 악몽을 맞이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 인간은 자꾸 윤리적 통제가 불가능한 기술을 추구한다. 인공지능(AI)도 마찬가지다. 가속페달만 밟다 보면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할 수도 있다.



조호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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