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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여적]서울시 시에스타

opinionX 2014. 7. 20. 20:30

정열의 나라 스페인은 밤이 길다. 서산에 해만 지면 한산해지는 유럽의 다른 나라와 달리 밤 12시가 되어도 거리에 인파가 북적인다. 올 나이트 하는 곳도 많다. 60, 70대 노인들이 새벽 3시까지 술잔을 기울이며 ‘노년을 발산’하는 것도 스페인에서는 낯선 광경이 아니다.

긴 밤을 보낸 만큼 하루의 시작도 늦다. 아침에 여유있게 일어나고 낮에는 온 나라가 오수(午睡)에 빠져든다. ‘시에스타’라는 단어를 만들어낸 나라도 스페인이다. 시에스타는 ‘여섯번째 시간’이라는 뜻의 호라 섹스타(hora sexta)라는 라틴어에서 유래된 말로 동틀 녘부터 정오 사이인 6시간이 지나 잠시 쉰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한다.

스페인에서 시작한 시에스타는 오래지 않아 세계 공통언어가 됐다. 우리 몸은 낮에 밥 먹고 나면 나른해지게 마련인데, 더운 나라에선 참기 어려울 정도로 졸음이 쏟아진다. 이때 졸음을 떨쳐내려고 몸부림치기보다 차라리 뇌를 쉬게 하는 게 집중력을 높여주고 일의 능률을 올려준다는 게 여러 전문가들의 연구보고다. 스페인 외에 이탈리아와 그리스, 아르헨티나, 베트남 같은 주로 열대기후 국가에서 시에스타를 시행하는 배경이다.

그리스의 한 가게에 시에스타 시간을 알리는 표지가 부착되어 있다 (출처 : 경향DB)


남의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던 시에스타가 우리나라에도 수입될 모양이다. 서울시가 다음달부터 낮잠정책을 시행한다는 것이다. 서울시 낮잠정책은 졸리는 사람 누구나 부서장에게 보고만 하면 점심 식사 후 1시간가량 별도의 휴식공간에서 잘 수 있게 해주는 방식이다. 물론 자는 시간 만큼 근무시간이 늘어나지만 꿀맛 같은 오수를 합법적으로 즐길 수 있다니, 직장인들에겐 눈이 번쩍 뜨이는 뉴스다. 그런데 정작 서울시청 직원들은 좀 뜬금없어 하는 분위기다. 민간에선 생각지도 않는 시에스타를 어떻게 공직에서 먼저 시행할 수 있나 하는 당혹스러움도 있다. 민원인이 특정 공무원을 찾을 때 “그분은 지금 시에스타 중입니다”라고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시에스타의 나라 스페인은 경제위기 이후 시에스타를 줄이는 추세다. 스페인 공무원 중에는 낮잠 잘 여유 따윈 없다고 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외신은 전한다. 그런 시에스타가 지금 우리에게 왜 필요한 걸까.


이종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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