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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이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가 각하 처분을 받았다고 한다. 각하는 수사의 필요성이 없거나 명백한 무혐의로 판단돼 수사를 종결하는 절차다. 검찰이 보기에도 국정원 고소가 터무니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표 전 교수가 국정원의 정권 편향적인 기관 운영과 무능을 지적하자 고소장을 냈다가 되레 망신을 자초한 꼴이다. 국정원 개혁을 요구하는 국민 여론을 소송이나 고소 남발로 덮을 수 있다는 발상 앞에 아연실색할 뿐이다.
국정원이 문제 삼은 것은 표 전 교수의 경향신문 칼럼이다. 그는 ‘풍전등화 국정원’이라는 제하의 칼럼에서 지난 대선 불법 개입이나 인도네시아 사절단 숙소 무단 침입사건을 거론하며 국정원의 전면 개혁을 요구했다. 국정원은 이를 명예훼손으로 맞대응했다. 하지만 검찰은 “국가기관은 명예훼손의 피해자가 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례를 들어 각하 처분했다. 신문 칼럼은 사실 적시가 아닌 의견 표명에 해당돼 명예훼손 사건 수사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점도 사유로 들었다. 너무나 당연한 결과다. 검찰이 고소 취하 여부를 타진했지만 국정원이 거부했다니 그 배경이 더 궁금하다.
국정원에 보내는 시민단체의 시민경고카드 발표 시위 (출처 : 경향DB)
국정원의 막무가내 소송과 고소장 남발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09년 박원순 서울시장이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시절 민간인 사찰 의혹을 제기하자 2억원의 손배 소송을 냈다가 패소한 바 있다. 또 간첩조작 사건 변호를 맡은 민변 소속 변호사를 상대로 6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과 함께 형사고발도 했다. 언론도 예외가 아니다. 국정원 난맥상을 지적하는 기사에 툭하면 “소송으로 대응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게 요즘 국정원이다. 비판 세력은 어느 누구라도 가만두지 않겠다는 투다. 자기반성은커녕 소송과 형사 고발로 재갈을 물리겠다는 것이나 다를 게 없다.
국정원 나름의 자기방어권을 부정하자는 취지는 아니다. 하지만 요즘 국정원 처사는 도를 넘었다. 지난 대선 불법 개입과 간첩증거 조작 사건을 계기로 국정원에 대한 국민 신뢰는 땅에 떨어진 지 오래다. 민·형사 소송으로 국정원에 대한 비판을 잠재우겠다는 발상은 어처구니가 없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자는 격이다. 그런다고 국정원의 죄상이 묻힐 수 있겠는가. 가당치도 않다. 남 탓에 앞서 철저한 자기반성이 우선돼야 한다. 국정원 역시 국민의 공복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언론통제와 정치개입 등 과거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국정원 개혁은 요원한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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