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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가 149명 규모의 통일준비위원회(통준위)를 발족시켰다. 통준위는 통일의 청사진을 만들고 박근혜 정부의 ‘통일 대박’론을 구체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통준위 출범에 대한 반응은 엇갈린다. 국민들의 통일의식을 높이고 정책의 책임성을 강화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반면 통준위가 통일부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등 관련 기관과 차별성이 없는 옥상옥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실 7월15일 정부가 통준위의 인적 구성을 발표하면서 그 위상과 역할은 명쾌하게 제시하지 못했다. 또 현 정부가 지난 정부부터 이어지고 있는 남북 대결국면을 개선하지 못한 상태에서, 통준위가 현 정부의 코드에 맞는 통일론을 조성해 그것을 국내 정치에 이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들린다.
대통령 소속 통일준비위원회 민간 부위원장에 임명된 정종욱 인천대 석좌교수. _ 연합뉴스
그렇지만 통준위가 출범한 만큼 자신의 위상을 분명히 하고 적절한 역할을 설정해 효율적인 운영을 해 나가야 할 것이다. 통준위는 통일코리아의 비전과 그 추진방향을 수립하는 조직으로 위상을 설정하는 게 적절하다. 따라서 그 역할은 통일 이후까지를 내다보는 중장기적이고 거시적인 정책과제를 개발하고, 그것을 효율적으로 추진할 정책운영체계를 확립하는 두 과제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각계의 전문역량을 결집하고 국민 의견을 수렴하는 민주적이고 개방적인 운영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통준위의 위상과 역할을 감안할 때 가장 중요한 과제는 통일의 방향성이다. 통일을 왜 하느냐의 문제이다. 이 질문은 통일에 거는 기대효과, 그 방법 및 극복과제에 관한 논의보다 앞서는 근본문제이다.
오늘날 우리는 통일이 민족 재결합 혹은 단일민족국가 수립이라는 당위로 환원하기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다. 70년여의 분단체제에 안주하며 분단을 정략적으로 이용해온 분단 기득권 집단의 책임만은 아니다. 통일의 필요성을 긍정하는 국민 여론은 과거 80%대에서 지금은 50%대로 낮아졌다. 남북 간 상호 이질적 체제, 극심한 경제적 격차, 북한의 잇단 핵실험과 도발 등에 따른 북한에 대한 높은 불신, 그리고 우리 사회의 경제적 양극화 및 사회갈등 심화로 통일 문제에 대한 관심 부족 등 그 원인은 복합적이다. 또 우리 사회는 다문화사회로 진입한 지 오래고, 저개발국의 저임금에 의존하는 다국적기업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이런 점들은 민족주의 통일론이 퇴색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한편 저성장 및 경제적 양극화의 틈을 타고 국가주의 통일론이 부상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선진국과 후진국 사이에 낀 한국 경제의 활로는 남북통일밖에 없고 그 일은 국가 주도로 갈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통일은 민족재결합이지만 궁극적으로 통일한국의 국력을 극대화하고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게 국가주의 통일론의 요지다. 그 연장선상에서 통일은 국가, 곧 정부가 주도해야 효율성이 높다는 현실론이 설득력 있어 보인다. 그러나 그런 통일은 주변국들의 경계로 국제적 지지를 얻지 못하고 민주주의를 위축시킬 맹점을 갖고 있다.
통일의 방향성을 재검토하지 않으면 민족주의 및 국가주의 통일론의 문제점을 벗어나기 어렵다. 이제 통일에 대한 시각을 새롭게 정립할 때이다. 통일을 한반도 전역에 인류 보편가치를 구현하는 과정으로 말이다. 통일은 왜 하는가? 남북한 겨레의 화해는 물론 한반도 모든 거주민들이 평화와 인권을 누리고, 이웃 나라 시민들과 함께 생태친화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다. 민족재결합은 그 계기이고 국가는 주요 행위자이되 시민들과 파트너십을 가져야 한다. 통일의 방향성은 미래지향적이어야 하고 그래서 보편적이어야 한다. 그럴 때 남북 협력과 국제사회의 지지를 동시에 획득할 수 있고, 나아가 통일은 인류문명의 발달에 기여할 것이다.
서보혁 |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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