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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동상앞에서 복직을 요구하는 김진숙씨 / 권도현 기자

“긴 공장의 밤/ 시린 어깨 위로/ 피로가 한파처럼 밀려온다….” 시인 박노해가 1980년대 발표한 ‘시다의 꿈’을 읽다 보면, 타이밍(각성제)으로 졸음을 겨우 쫓아가며 밤새 미싱(재봉틀)을 돌리는 1970~1980년대 어린 여성 노동자의 고된 일상이 그려진다. 이 시에 곡을 붙인 같은 이름의 민중가요도 여성 독창이라야 제맛이 난다. 슬픔이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된다는 걸 일깨운다.

1970년대 민주노조운동을 이끈 건 여성노동자였다. 의류·가발 제조 등 경공업 중심의 수출 드라이브 정책이 국가경제를 떠받치던 때 다수의 ‘수출역군’은 지방에서 상경한 20세 안팎의 여성 노동자였다. 근로조건은 처참했다. 1975년 여성노동자의 임금 수준은 남성노동자의 42.2%에 불과했다. 노동기본권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가부장적 노사관리와 비인격적 대우는 예사였다. 어용노조가 대부분이던 당시 노동자의 권리를 찾으려면 민주노조를 세워야 했다. 1970년대에 도시산업선교회 등 양심적 종교세력의 도움을 받아 여성노동자 중심의 민주노조운동이 태동한 배경이다. 원풍모방, 동일방직, YH무역, 반도상사 노조 등이 그들이다.

정부·사용자의 탄압이 이어졌다. 해고와 블랙리스트는 기본이었다. 남성노동자들의 냉소가 장벽처럼 그들을 가두었다. 1978년 동일방직 노조가 대의원 선출 투표에 나서자 사측의 사주를 받은 남성노동자들이 여성조합원들에게 똥물을 퍼부었다. 1979년 YH무역 노조의 신민당사 농성은 1000여명의 경찰에 강제진압당했다. 이 과정에서 노조원 김경숙이 사망했다. YH사건은 유신정권 몰락의 전조였다.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은 1970년대 민주노조운동의 존재증명이었다.

원풍모방, 동일방직, YH무역, 반도상사의 1세대 여성 노동운동가들이 14일 한진중공업 해고자 김진숙의 복직을 촉구했다. 1981년 최초의 여성 용접공으로 한진중공업에 입사한 김진숙은 여성 노동운동 2세대다. 17일 후면 암투병 중인 그가 정년퇴직하게 되는데, 회사는 11년째 그의 복직을 거부하고 있다. “진숙아, 너의 복직이 우리의 복직이야”라는 1세대 노동운동가들의 외침에서 현재 진행형인 민주노조운동, 여성 노동운동의 수난사가 보인다.

정제혁 논설위원


 

오피니언 여적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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