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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여적

[여적]재벌가 혼맥

opinionX 2020. 12. 17. 09:38

결혼 관련 이미지_김상민 기자

1988년 9월, 노태우 전 대통령 취임 7개월이 됐을 때다. 청와대 영빈관에서는 이현재 전 국무총리 주례로 성대한 결혼식이 열렸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 전 대통령의 딸 노소영 아트센터나비 관장이 주인공으로, 재벌가 혼맥 연결의 상징적 사건이었다. 예로부터 재벌가는 사세 확장이나 ‘보험용’으로 유력 정치인, 관료 집안이나 다른 재벌과 혼사를 늘려왔다. 대표적인 재벌가 혼맥은 삼성과 중앙일보의 결합이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장인은 이승만 정부 때 법무·내무부 장관을 지낸 홍진기 전 중앙일보 회장이다.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은 1973년 당시 이재철 교통부 차관의 장녀 이명희씨와 결혼했다. 대한항공을 관리·감독하는 중앙부처 실세와 사돈이 된 것이다.

2~3세로 오면서 정·관계와의 ‘정략결혼’은 크게 줄고, 재벌끼리 혼사는 더 얽히고설켰다. 폭넓은 혼맥을 자랑하는 재벌은 국내 최대 기업 삼성이 아니라 LG나 GS다. 언론 집안과의 혼맥도 눈에 띈다.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의 장녀 서민정씨는 지난 10월 중앙홀딩스 홍석현 회장의 동생 홍석준 보광창업투자 회장의 장남 홍정환씨와 결혼식을 올렸다. 한편으론 반듯하고 학벌 좋은 일반인과의 혼인도 증가했다. 정몽준 아산사회복지재단 이사장의 장남 정기선 현대중공업 부사장은 7월 교육자 집안 여성과 혼인했다. 10년 사내연애 끝에 일반 직원과 결혼한 김동관 한화솔루션 대표도 그렇다.

CEO스코어가 총수 있는 55개 대기업집단의 혼맥을 분석해보니, 317명 가운데 대기업 가문과 혼인한 비중이 153명(48.3%)이었다고 한다. 이 수치가 부모 세대는 46.3%였고 자녀 세대에선 50.7%로 늘었다. 반면 정·관계 집안과의 혼사는 부모 때 28%에서 자녀 세대는 7%로 급감했다.

정치적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노골적인 ‘정경유착’식 혼맥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몸집이 커진 재계에서 과거의 개발연대 시대만큼 정치인·관료 집안과의 연 맺기에 공들이지 않는 것일까. 그보다는 재벌끼리 ‘그들만의 리그’를 굳혀서 부의 확대재생산과 대물림에 치중하겠다는 계산일까. 일감 몰아주기 견제 같은 경제 민주화가 더 중요해진 현실이 혼맥 지도로도 읽힌다.

전병역 논설위원 junby@kyunghyang.com


 

오피니언 여적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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