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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준비된 대통령’을 얘기한다. 지지율이 높건, 낮건 마찬가지다. 웬만한 여론조사에선 대상에 끼워주지도 않아 지지율을 알 수 없는 이들도 그렇게 말한다. 하기야 ‘급하게 나오느라 준비는 좀 덜 됐지만 대통령 하면서 채워나가겠다’라고 말할 리는 만무하다.

“대한민국을 새로운 국가, 나라다운 나라로 만드는 데 가장 준비된 사람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달 19일 경향신문 대선주자 신년인터뷰에서 ‘왜 박원순인가’라고 묻자 내놓은 답변이었다. 그로부터 1주일 뒤 그는 돌연 불출마를 선언했다. “현실 정치인으로서 갖춰야 할 많은 것들이 부족했다. 스스로 마음가짐, 결기도 부족했다. 의욕만 앞섰음을 이제야 깨달았다”는 말과 함께 대선 무대에서 퇴장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도 20일간 ‘벼락 정치’를 하고 손을 들었다. 기성 정치권을 격하게 비판했지만 실상은 박 시장의 ‘불출마 변’과 달라 보이지 않는다. 아직 대선 트랙 위에서 뛰고 있는 이들은 최적화된 대통령 후보라고 여전히 자부하는가.

‘준비된 대통령’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1997년 대선 캐치프레이즈였다. 1971년부터 대선에 세 번 떨어지고 26년 만에, 4수 만에 당선됐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54년 제3대 민의원이 된 것을 기준으로 보면, 근 40년 만에 대통령이 됐다. 흔히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한다. 대통령이란 위치는 그럴 ‘사람’이 그에 맞는 ‘자리’에 가야 한다. 2012년 ‘준비된 여성 대통령’을 내걸었던 ‘대선 재수생’ 박근혜의 현재 상황이 이를 웅변한다.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인용으로 대선 일정이 당겨질 것이란 전망이 많다. 그러면 대선은 앞으로 석 달도 남지 않는다. 대선 기간이 짧아지면 아무래도 사람이 먼저 보이기 마련이다. 지금 도전자들의 정치적 연륜이 거명된 대통령들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국민들은 그들의 지나온 날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다. 그 사람의 정체성으로 규정되기도 한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오른쪽)가 13일 경기 고양시 한국시설안전공단을 찾아 상황실 모니터를 보며 공단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김창길 기자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준비된 대통령’을 적극적으로 설파한다. 실제 준비 정도만 놓고 보면 문 전 대표가 가장 앞섰다는 평가도 듣는다. 안희정 충남지사라고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도지사는 국정경험의 축소판인데 재선 도지사에게 준비가 안됐다고 지적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란 식이다. 30년 정당정치 경험을 부각시키는 데선 나보다 정치를 더 오래한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는 투로 들린다. 손학규 전 국민주권회의 의장도 국회의원 4번, 장관, 도지사, 당 대표 2번 했다. 세번째 대선 출마를 위해 국민의당에 입당했다. ‘준비된 대통령’에 자기 이름을 빼면 실례라는 말을 들을 판이다.

주자들의 준비 상황은 메시지와 행보를 통해 드러난다. 문 전 대표는 “제가 대세 맞습니다”라고 대놓고 얘기한다. 매주 분야별로 공약을 발표하고, 매머드급 자문단도 잇따라 띄우고 있다. 대통령이 잘났다고 해도 국정운영 능력을 판단하려면 함께할 사람도 봐야 하는 것 아니냐, 다른 후보들은 이런 거 못하지 않느냐 하는 식이다. 안 지사는 보수와 중도를 파고든다. 지지층과 비토층이 분명한 문 전 대표를 추격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보인다. 진보·개혁세력만 두드려선 ‘문재인의 벽’을 넘기 어렵고, 이는 예견된 패배의 길이라고 생각한 듯하다. 최근 오른쪽으로 옮겨가고 있는 안철수 전 대표도 그런 점에선 비슷하다.

한편으론 문 전 대표는 가장 능동적이어야 할 후보가 한발 뒤에 서 있는 것처럼 비치고, 안 지사는 자신의 가치 지향을 앞세우지만 구체성 측면에선 정확히 뭔지 와닿지 않는 부분이 있다. 안 전 대표는 미래를 키워드로 강조하지만 “문재인과 나의 대결”이라고 각세우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는 듯하다. 주자들은 전략·전술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수정하면서 ‘준비된 후보’로 만들어갈 것이다. “조선왕조 500년 동안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이 다 생길 것”(안 전 대표)이라고 할 만큼 앞으로 벌어질 일을 섣불리 예단하기 어렵다. 본인이 강조한다고 해서 국민들의 생각과 일치하는 것도 아니다.

대통령의 자질로 미래 비전과 그것을 실현해낼 역량, 원칙과 소명 의식, 도덕성 등이 거론된다. 고비마다 상황을 타개해 나갈 결단력도 필요하다. 차기 대통령은 국정농단으로 붕괴된 정권의 뒤를 잇게 된다.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개혁을 수행할 새로운 지도자를 원하는 여망에 부응해야 한다. 각별한 리더십을 요구받는 셈이다. 혼자서 준비 상태가 완벽하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경향신문 신년 여론조사에서도 대통령 후보 선택 기준으로 ‘통합·소통 능력’(36.0%)을 가장 많이 꼽았다. 국민을 설득하고 함께 나갈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안홍욱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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