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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여전히 일을 하고 걱정하고/ 돈을 벌고 싸우고 오늘부터의 할일을 하지만/ 내 생명은 이미 맡기어진 생명/ 나의 질서는 죽음의 질서/ 온 세상이 죽음의 가치로 변해 버렸다’(시 ‘말’의 부분)

김수영의 시에 죽음에 대한 인식이 드러난 것은 1960년대 중반부터다. 평론가들은 1964년 쓰인 시 ‘말’을 본격 죽음을 파고든 작품으로 본다. 시에서만 그랬던 게 아니다. 부인 김현경씨는 김수영이 책상 달력에 ‘상왕사심(常往死心)’이라는 좌우명을 써놓았다고 증언했다.(<김수영의 연인>) ‘늘 죽음을 생각하며 살아라’는 뜻이다. 김수영은 한국전쟁 때 인민군에 징집돼 북한에서 강제 노동을 하는 등 극심한 고통을 받았다. 인민군에서 탈출해 서울까지 왔으나 다시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수용되고 만다. 이 와중에 두 동생은 행방불명됐다.

김수영에게 전쟁을 통한 죽음의 공포 체험은 시를 쓰게 하는 원천이었다. 평론가 김종철은 “죽음에 대한 남다른 인식으로 일상의 피상적인 경험의 갈래를 좇아 허우적거리지 않고 여러 경험의 의미를 근본에서 꿰뚫어 볼 수 있게 했다”고 진단했다. 시인 황규관은 <리얼리스트 김수영>(한티재)에서 “죽음을 삶으로 바꾸는 시적 사유를 감행하면서 죽음은 삶을 비추는 거울인 동시에 삶은 죽음을 사는 것과 같은 것이 되었다”고 분석했다. 김수영에게 ‘죽음’은 종결이 아니라 삶을 삶답게 하는 근거였다.

죽음을 통해 생명의지를 노래했던 시인은 1968년 6월16일 교통사고로 세상을 떴다. 48세. 그러나 너무도 풋풋하게 젊음과 자유를 노래한 탓인지 그의 죽음은 김소월보다도 더 때이른 요절로 느껴질 정도였다. 김수영은 우리 시대 최고의 시인이다.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38선은 세계에서 제일 높은 빙산의 하나다’. 그의 시와 산문 한줄 한줄은 읽는 이를 벌떡 일어나게 한다. 그의 영향력은 문학에 국한되지 않는다. 철학·역사 분야의 학제 간 연구도 활발하다. 작고 50주기를 맞은 올해는 더욱 풍성하다. <김수영 전집> 결정판이 출간됐고 시집 <달나라의 장난> 복각판도 나왔다. 시인이 중퇴한 연세대는 31일 명예졸업장을 수여한다. 오는 11월에는 학술대회도 열린다. 50주기라지만, 김수영은 살아있다.

<조운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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