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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가 30일 ‘양승태 대법원’의 주요 과거사 판결과 관련한 헌법적 판단을 내렸다. ‘민주화운동 보상금을 받은 사람은 국가와 화해한 것이므로 별도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는 판결과 관련해선 판결에 적용된 민주화보상법 조항이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고문·조작사건 피해자의 국가배상 청구권 소멸시효를 3년에서 6개월로 단축한 판결을 두고는 관련법인 민법 조항을 위헌으로 판단했다. 대법원 판결 자체를 취소하지는 않았으나, 관련법에 대한 위헌 결정을 통해 해당 판결의 잘못을 인정한 것이다. ‘양승태 사법농단’에 대한 검찰 수사가 법원의 비협조로 지지부진한 가운데 처음으로 사법농단 피해 구제 가능성을 열었다는 의미가 있다.

30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긴급조치 피해자들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이 기자회견을 열고 긴급조치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배상 책임을 인정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을 취소해달라며 낸 헌법소원을 헌재가 각하한 것에 대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헌재의 이번 선고는 ‘이진성 소장 체제’의 마지막 선고였다. 앞서 헌재는 이 소장 등 재판관 5명이 다음달 퇴임하는 만큼, 현 체제에서 주요 과거사 관련 사건들을 매듭짓기로 결정한 바 있다. 법조계에서는 대법원 판결의 근거가 된 법률에 대한 위헌 결정을 넘어 재판 자체를 취소할 가능성도 있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그러나 헌재는 법원의 재판을 위헌심사 대상에서 제외한 헌재법 68조 1항을 합헌으로 보는 기존 입장은 유지했다.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재판소원)을 인정할 경우 사법체계가 실질적으로 4심제화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본다. 이로 인해 긴급조치 피해자들이 국가 상대 손배소에서 패소한 뒤 ‘판결을 취소해달라’며 낸 헌법소원은 각하했다.

헌재가 ‘뜨거운 감자’인 재판소원을 피해간 점은 한계임에 분명하다. 그럼에도 사법농단 피해자들의 권리구제 경로를 열었다는 의미는 작지 않다고 본다. 당장 민주화보상법 및 국가배상 청구권 관련 헌법소원을 제기한 당사자들은 재심을 청구할 수 있는 근거를 얻게 됐다. 이들의 재심 청구가 받아들여져 대법원에서 판결이 변경될 경우 실질적으로 ‘재판 취소’의 효과를 갖게 된다. 대법원은 재심 청구를 적극적으로 인용해 과거의 오류를 스스로 바로잡는 게 도리일 것이다.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이 드리운 그늘은 크고도 깊다. 과거사 사건 외에도 수많은 사건의 피해자들이 분노하며 책임자 처벌과 피해 구제를 요구하고 있다. 잇단 압수수색영장 기각 등에 비춰볼 때, 법원의 수사 협조를 기대하는 일은 이제 무망해 보인다. 국회는 이미 계류 중인 사법농단 관련 특별법안들을 조속히 심의해 통과시켜야 한다. 무너진 사법정의를 다시 세우고 피해자들의 눈물을 닦아줄 책무가 국회에 있다. 정부도 보상·배상을 위한 정책적 조치들을 모색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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