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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빈 토플러는 <제3의 물결>(1980년)에서 처음으로 ‘재택근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토플러는 제1의 물결인 농업혁명은 수천년에 걸쳐 진행되었지만 제2의 물결은 300년밖에 걸리지 않았고 제3의 물결인 정보화 혁명은 20~30년 내에 이뤄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토플러 예언이 있은 후 36년이 지난 지금 재택근무는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닌 현실이 되었다. 누구라도 노트북, 스마트폰 등 IT기기만 있으면 집에서 일하는 것이 가능해졌고 ‘스마트워크’는 더 이상 낯선 개념이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재택근무가 활성화됐다 하더라도 아직까지는 집과 직장이 분리돼 있고 출퇴근 시간이 정해진 전통적인 ‘나인투식스’ 모델을 대체할 정도는 아니다. 특히 가부장적인 기업문화가 발달한 아시아권에서 재택근무는 여전히 낯설고 불안하다. 직장 상사는 부하직원이 눈앞에 없으면 제대로 일을 하는지 알 수가 없어 불안하고 반대로 부하직원 역시 상사의 ‘눈도장’을 찍어야 마음이 편하다.
이 점에서 일본 도요타자동차가 8월부터 1주일에 2시간만 회사에 나와서 일하고 나머지는 집에서 근무하도록 한 것은 가히 ‘혁명’이라 부를 만하다. 대상은 전체 직원의 3분의 1인 2만5000명으로 인사·경리·영업·연구개발직 등이다. 도요타의 조치는 워킹맘과 중견사원들이 아이를 키우거나 노부모를 봉양하기 위해 중간에 그만두는 것을 방지함으로써 유능한 인재를 확보하는 데 목적이 있다. 급격한 저출산·고령화 추세가 남의 일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웃나라에서 벌어지는 새로운 실험은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하지만 도요타의 실험을 마냥 부러운 시선으로만 바라볼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자칫 육아와 노부모 봉양이 사회적 의무보다 개인의 부담으로 되돌아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고정적인 근무시간이 없는 대신 24시간 원격으로 작업지시가 가능해져 노동강도가 강화될 가능성도 높다. 무엇보다 재택근무는 함께 일하는 노동의 즐거움, 집단적 창의와 협업의 중요성이 간과되기 쉽다. 스티브 잡스는 애니메이션 회사 픽사 사옥을 설계할 당시 ‘우연한 맞닥뜨림’을 강조한 것으로 유명하다. 잡스의 시선은 도요타의 실험에 없는 또 다른 노동의 중요한 측면을 가리키고 있다.
<강진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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