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경기도가 며칠 전 더불어민주당 도의원 두명에게 2000만원씩 포상금을 지급했다. 경기도가 포상금 성격으로 줄 수 있는 최고 한도액이다. 새누리당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월례조회에서 직접 그들에게 전했다. 세수증대로 지방재정 확충에 기여했다는 게 포상 이유다. 지방정부 출범 이래 도의원이 일을 잘했다고 집행부가 수천만원의 포상금을 시상한 것은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집행부가 예산을 허투루 쓰는지, 세금을 제대로 거둬들이는지를 감시하는 것은 지방의원들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다. 그런데 그 의무를 남들보다 더 잘했다는 이유로 피감기관이 의원들에게 거액의 포상금을 안긴 것은 도무지 납득이 가질 않는다. 삼권분립 원칙에도 어긋나 보인다. 의원들이 신청한 것도 아니고 경기도 공무원들이 이례적으로 추천해 포상했다는 점에서 우회적 뇌물로도 비칠 수 있다.
이대로 두면 집행부와 지방의원들간의 돈잔치는 썩은 과일에 벌레 꼬이듯 너도나도 달려드는 형국이 확산될 것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다른 광역의회는 물론이고 기초의원들도 앞다퉈 도입할 것이고, 여야 의원들간 나눠먹기식으로 변질될 수도 있다. 국회의원들도 분위기를 보며 호시탐탐 기회를 노릴지도 모를 일이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인데 그들이 결코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경기도의원의 올해 의정활동비는 전국 광역의원 가운데 가장 많은 6321만원이다. 서울시의회 의원들보다 70여만원이 더 많다. 그래서 그들에게 포상금 2000만원은 그리 커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위험을 무릅쓰고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일하다 생을 마감한 열아홉살 청년이 일년을 꼬박 저축해도 만질 수 없는 돈이다. 과연 당당하게 가욋돈으로 주고받을 수 있는 돈인지 양쪽 모두에게 묻고 싶다.
경기도는 법에 규정된 예산성과금을 지급한 것으로 위법이 아니라고 한다. 의원 두명 역시 한마디로 열심히 일해서 받을 돈을 받은 것이라는 입장이다. 이는 합법과 위법의 문제라기보다는 상식과 도의의 문제다. 뒤집어 보면 그간 해당 공무원과 동료 의원들은 먹고 놀았다는 것인가. 의원 각자를 평가해 인센티브로 의정 수당을 주는 것도 아닌데 남들보다 좀 더 열심히 했다고 세금을 따로 퍼주는 모양새에 너무나 뻔뻔한 모습들이다. 이미 적잖은 녹을 받고 있는 만큼 노고에 감사한다는 공로패 정도면 족하다고 본다.
집행부는 물론 의원들 사이에서도 까칠하기로 소문난 두 의원에게 법이 정한 최고의 포상금을 지급하자고 제안한 공무원은 아마도 돈이 제갈량이라고 그 수를 신의 한수쯤으로 본 것 같다. 어느 정도의 비판도 미리 점쳤을 것이다. 그런데도 일사천리로 추진한 것을 보면 내심 무언가 확실한 효과를 기대했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하다. 그 예상이 무엇인지는 어렵지 않아 보인다. 두 의원은 앞으로 눈먼 말을 타고 벼랑으로 가는 꼴이 될지도 모른다. 열정적인 의정 활동이 앞으론 포상금을 받기 위한 모습으로 주변 사람들의 술안주나 뒷담화에 오를 공산이 크다. 곱지 않은 시선을 받으며 의정활동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위축될 것이다. 집행부가 불편해하는 의원들이 위축되면 과연 누가 가장 좋아할까.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물음이다.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취임 직후 야당이 추천한 사회통합부지사에게 일부 권한을 넘겨줬다. 이 정책으로 ‘연합정부(연정)’ ‘협치’라는 단어는 남 지사의 아이콘이 됐다. 하지만 법률·제도적 근거 없이 정책 합의에 그친 것이어서 여러 면에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행정자치부가 경기도에 대한 종합감사에서 도의회에 배정한 자율예산에 대해 위법성 여부를 조사하겠다는 것도 한 예다. 경기도는 지난해 400억원에 이어 올해 500억원을 도의회 자율예산으로 편성했다. 이 예산은 의원들에게 집행권한을 넘긴 것인데 의회 내부에서 조차 회의적 분위기가 우세하다. 시간이 갈수록 연정은 남 지사의 이미지 메이킹용이며, 여소야대인 경기도의회와의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궁여지책이었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다음달 2기 출범을 앞두고 있는 경기도의 연정은 남 지사를 개혁적인 인물로 보이게 하는 데에는 성공했다. 하지만 속사정을 잘 아는 사람들은 그렇게 호의적으로 평가하지 않는다. 자신의 한쪽 팔을 넘겨준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민원이 많은 복지·환경 등의 분야를 야당에 떠넘겼다는 의견도 나온다.
그리고 야당이 우세한 의회에 위법성이 있는 예산 수백억원을 선심 쓰듯 잘라준 것 역시 의회를 무력화하기 위한 꼼수라는 눈총도 있다. 행여 이번 야당의원 포상금이 연정의 연장선 끝자락에라도 있다면 한국의 첫 정치실험으로까지 포장됐던 연정은 협치가 아니고 야합이며, 돈치에 불과하다.
<이상호 전국사회부장>
'일반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동칼럼]제20대 국회에 바란다 (0) | 2016.06.13 |
---|---|
[여적]재택근무 (0) | 2016.06.13 |
[기고]고준위 방폐물 관리, 최고의 안전 기반 위에서 (0) | 2016.06.13 |
[정희진의 낯선 사이]혐오는 대칭적이지 않다 (0) | 2016.06.13 |
[여기 우리 있어요]장애학생들의 ‘배리어 프리’ 축제 (0) | 2016.06.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