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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순종 때 빙허각(憑虛閣) 이씨가 편찬한 <규합총서>에는 “밥먹기는 봄같이, 국먹기는 여름같이, 장먹기는 가을같이, 술먹기는 겨울같이 하라”는 글이 있다. 똑같은 음식이라도 먹기 좋은 계절이 있다는 의미다. 계절 따라 일미 어종도 다르다. “봄에는 도다리, 여름에는 민어, 가을에는 전어, 겨울에는 숭어가 제격”이라는 말이 있듯이 아침저녁으로 찬 바람이 드는 가을에는 전어가 제맛이다. 청어과에 속하는 물고기인 전어는 봄에서 여름까지가 산란기다. 이때는 맛이 없다. 가을이 되어야 뼈가 부드러워지고 속살에 지방질이 들어차 고소한 맛이 더해진다. “가을 전어에는 깨가 서 말”이란 말이 유래된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
문재인 대통령이 24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노동계 초청 대화에서 참석자들과 티타임을 열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이성경 한국노총 사무총장, 김영숙 국회환경미화원노조 위원장, 김민수 청년유니온 위원장,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 문 대통령, 김준이 사회복지유니온 위원장, 안병호 영화산업노조 위원장. 청와대사진기자단
정약전은 <자산어보>에 전어가 화살촉처럼 생겼다고 해서 ‘전어(箭魚)’로 표기했다. 서유구는 <난호어묵지>에 돈 전 자를 써 ‘전어(錢魚)’로 표기했는데 그 사연이 흥미롭다. 그는 “상인이 전어를 염장해 한양에 가져와 파는데 귀천(貴賤)을 가리지 않고 모두 좋아한다. 사람들이 돈을 아까워하지 않고 사기 때문에 ‘전어(錢魚)’라고 한다”고 적었다. 전어는 구워먹어야 제격이다. 전어의 계절인 가을이 돌아오면 회자되는 “전어 굽는 냄새에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속담은 기름진 전어를 굽는 고소한 냄새를 강조한 것이다. 하지만 “전어를 굽는 가을이면 추수 걱정에 집 나간 며느리가 돌아온다”는 말이 와전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그제 청와대에서 마련한 노동계 인사들과의 간담회와 만찬에 민주노총이 불참했다. 청와대는 가을 전어까지 준비하며 양대 노총의 노사정위원회 복귀를 기대했다. 민주노총은 청와대가 간담회에 문성현 노사정위원장을 배석시키고, 산별노조 관계자를 일방적으로 초청한 것을 불참 사유로 들었다. 민주노총의 불참으로 문재인 정부의 첫 노·정 대화는 ‘반쪽짜리’가 됐다. 가을 전어 굽는 냄새 때문이 아니라 농사일 걱정에 집으로 돌아오는 며느리의 심정으로 민주노총도 노동계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간담회에 참석하는 게 옳지 않았을까. 실질적인 대화와 교섭이 이뤄지려면 일단 만나서 말부터 트는 게 순리다. 음식에 제철이 있는 것처럼 사회적 대화에도 적절한 때가 있는 법이다.
<박구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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