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매주 한 사람에게서 한 통의 편지를 받는다. 간혹 건너뛰거나 두 통이 한번에 도착하기도 하지만, 대략 일주일의 간격을 두고 온다. 편지봉투는 언제나 밀봉되지 않은 채로 온다. 나보다 먼저 누군가 읽었을 수도 있다. 아니 그래야만 내게 전해질 수 있는 편지다. 발신자의 주소는 사서함 몇 호. 수신자의 주소는 돈키호테의 식탁. 우편함이 따로 없는 탓에 그 편지는 때로 바람에 날려 길가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그래도 놓친 편지는 없을 거라 믿는다. 편지를 가방에 넣고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이 편지는 이상하게 바로 읽게 되지 않는다. 일과를 다 마치고 난 후 집에 돌아가, 소파나 침대에 몸을 던진 다음 비로소 꺼내 읽는다. 아직 씻지 않은 채로. 음식냄새 기름냄새를 지우지 않은 채로. 편지를 꺼낸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다.

고전적인 편지지. 아주 익숙한 볼펜의 질감. 정성들여 꾹꾹 눌러 쓴 글자들. 펜글씨 교본에 따라 쓴 글씨 같다. 자간도 일정하고 글씨체도 한결같다. 고친 흔적도 없다. 감정을 가늠할 수 없는 필적이다. 다른 곳에 몇 번이고 고쳐 쓴 내용을 베껴 그린 그림 같다. 어쩌면 최종적인 편지를 위해 몇 장의 편지지를 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너무 정갈해서 출력물이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다.

편지는 언제나 내 안부를 묻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 겨울, 이 봄, 이 여름, 이 가을. 감기는 안 걸리고 잘 지내는지, 건강은 괜찮은지, 몸은 고되지 않은지, 아프지는 않은지.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오늘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어떤 반성을 했는지, 어떤 기대를 갖고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임했는지. 여름의 그곳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그래도 어떻게 버티고 있는지. 함께 지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한다. 그들이 무슨 죄를 지었으며 무슨 생각으로 살고 있는지. 그들을 바라보며 어떤 생각을 하는지. 그러고는 언제나 응원으로 마무리한다. 힘들어도 힘내시라. 지치고 말고 잘 지내시라. 웃음을 잃지 마시라. 건강하시라.

식당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사서함 몇 호로 시작되는 곳으로부터 몇 통의 편지를 받았다. 모두 나에 관한 기사를 읽고 보낸 편지였다. 내가 어떤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고 여겼는지, 새로운 삶을 꿈꾸고 있다고 믿었는지, 어쨌거나 그들에게 어떤 자극을 준 것만은 분명했다. 한결같이 자신들도 새로운 삶을 꿈꾸게 되었다고 썼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곳으로 책을 보내달라 했고, 누군가는 곧 그곳을 나가서 새로운 도전을 할 터이니 돈을 보태달라고도 했다. 나는 답하지 않았고, 편지는 그걸로 끝이었다. 하지만 이 편지의 주인만은 달랐다. 그는 소설을 쓰고 싶어 했다. 그곳에서 겪은 일들을 소설로 쓰고 싶다 했다. 혹시 도와줄 수 있겠냐 조심스레 물었다. 아니면 그곳의 일들을 내가 소설로 쓰고 싶다면 자신이 도와주겠다고 했다. 아니면 그냥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만이라도 했으면 좋겠다 했다. 나는 응답하지 않았다. 그냥 그의 편지를 읽었다. 수감자와의 서신교환을 통한 어떤 체험을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걸로 그의 말대로 소설을 쓸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리하지 않았다. 소극적인 응답. 그의 편지를 옆으로 치우지 않고 읽는 것으로 내 태도를 정했다.

두려웠다. 그가 죗값을 치르고 있는 수감자여서가 아니었다. 그가 무슨 죄를 저질렀는지도 모른다. 나는 여태 소설을 쓰며 살아왔다. 소설이 얼굴이었다. 작가라는 사람은 소설 뒤에 숨어 있으면 되었다. 나는 공개되지 않아도 되었다. 책이 나오면 낭독회나 작가와의 만남을 하지만, 그건 일종의 행사였다. 굳이 알려 든다면 알 수 있겠지만, 내가 살고 있는 주거지나 내가 자주 가는 카페 같은 것이 공개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식당을 하고 있는 현재의 나는 그렇지가 않았다. 언제라도 누구라도 방문할 수 있는 곳에, 일정한 시간이면 어김없이 가 있다. 나는 모르지만 나를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낱낱이 공개되어 있는 상태. 숨을 곳이 없었다. 그래서 더 집요하게 주방 뒤로 숨어, 열심히 요리만 하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의 편지를 기다리게 되었다. 문득 생각나 날을 꼽아보고, 혹시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지는 않았나 주위를 돌아보게 되고,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궁금해지게 되고. 응답 없는 내 태도에도 여전히 묵묵히 자신의 소식을 전해오고 내 안부를 물어주는 그 편지. 위안을 받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잊을 만하면 도착하는 그 편지로부터. 읽는 것만으로 위안이 된다는 건 나중에 알았다. 그의 새 편지를 가방에 넣다가 문득, 내 글도 누군가에게 그런 일을 했었을지 모른다고 믿어보기로 했다. 어쩐지 뭉클한 느낌이었다.

얼마 전에는 식당에 다녀간 사람으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멀리 부산에서 업무차 서울에 왔다가 들렀었다고 했다. 오래전 내 소설을 읽고 감명을 받았었으며, 그래서 온 김에 아는 척이라도 하고 싶었으나 그냥 음식만 맛있게 먹고 돌아갔다는 이야기. 뒤늦게 편지를 보냈으나 반송이 되었더라는 이야기. 그리하여 그 편지를 메일로 다시 보내게 되었다는 이야기. 메일에 답은 하지 않았다. 실은 어찌 말해야 할지 모르겠었다. 잘 먹어줘서 고맙다고 해야 할까. 그의 바람대로 곧 소설을 보여주겠다고 다짐해야 할까. 다음에 오게 되면 알은척을 하시라 할까. 그냥 고마운 마음만 간직하기로 했다.

또 한 방문자를 기억한다. 일 년에 하루 정도 온전히 자기만의 외출을 할 수 있는, 두 아이를 키우는 가정주부라고 했다. 그녀는 책을 사랑했다. 그래서 그 일 년의 하루를, 소설가가 하는 식당에서 보내기로 한 것이었다. 영업시간이 끝났고, 조금 취한 듯 보였으나 그만 돌아가시라 할 수 없었다. 그냥 그녀의 술잔에 술을 조금 더 채워주었다. 그녀는 고백했다. 자신이 암에 걸렸었다고, 가망 없다 했고 오래 치료를 받았고 지금은 괜찮아졌다고. 죽을지도 모른다는 상황을, 그녀는 더 이상 책을 읽을 수 없는 상황으로 받아들였다. 세상에 좋은 책이 많은데, 아직 읽을 책이 이렇게 많은데, 그걸 더 읽을 수 없다니. 그게 가장 슬펐다고 했다. 지금도 그게 제일 두렵다고 했다. 죽음을 앞에 두고 기껏 책이라니. 그깟 책이 뭐라고.

글을 쓰는 일에 대해 생각한다. 글이 주는 힘에 대해 생각한다. 내 어깨를 두드려준 누군가의 편지를 생각한다. 이 지면을 빌려 감사를 표한다. 내가 계속 소설을 써야 하는 이유를 일깨워준 사람들. 그리고 사서함 몇 호의 그는 이미 소설가다. 나는 그의 소설을 기다린다. 내 소설을 기다리는 누군가처럼.

<천운영 소설가>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