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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여적]전자옷장

opinionX 2017. 2. 8. 10:39

제비를 도와주고 부자가 된 흥부의 집을 찾은 놀부가 빼앗아 온 것은 화초장이었다. 화초장은 문판에 꽃그림을 장식하고, 장 안에는 한지나 비단을 바른 모과나무 옷장이다. 놀부는 하인을 시켜 보내주겠다는 흥부의 말을 듣지 않고 직접 지게에 지고 갔다. 그만큼 장롱은 귀중한 세간이었다. 개발시대 이후 가장 각광을 받은 장롱은 자개농이었다. 자개농은 전복껍데기 등을 썰어 조각을 내고 이를 꼼꼼히 붙여서 마무리한 것이다. 빛을 받으면 영롱하게 빛나는 자개장식은 안방마님의 마음을 훔쳤다.

장롱은 가구인 동시에 부의 상징이었다. 자개장을 들여놓을 형편이 되지 못하면 유사품인 호마이카로 만든 장롱을 택했다. 호마이카는 나무 등의 표면에 멜라민 수지를 덧입혀 깨끗한 느낌을 주는 플라스틱 판이다. 자개장처럼 반들반들하게 윤이 나면서도 가격은 자개장보다 저렴했다. 이후에는 번쩍이는 하이그로시, 고풍스러운 느낌이 나는 앤티크, 원목의 나뭇결이 살아 있는 원목장 등도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안방의 장롱을 자랑하던 때도 가고 이제 실용성을 중시하는 시대로 변했다. 장롱은 키가 커졌고, 문을 열면 자동으로 램프가 커지는 등 외형부터 달라졌다. 수납공간도 소비자의 취향에 따라 칸칸이 효율성이 높도록 다양화됐다. 아예 붙박이장으로 만들기도 한다.

한 걸음 더 나가 이제는 옷장이 가구가 아니라 전자제품인 시대가 됐다. 이른바 전자옷장이다. 옷장이 단순히 옷만 넣어두는 기능만 하는 것이 아니다. 세탁기의 스팀, 냉장고의 온도관리, 에어컨의 기류제어 기술 등 3종류 가전제품의 핵심기능을 다 한다. 생활 구김을 줄여주고, 냄새를 없어주며, 의류에 묻은 세균과 집먼지 진드기를 제거하는 것은 물론 미세먼지도 없애준다고 한다. LG전자 관계자는 “올 들어 판매가 부쩍 늘어 4분에 1대꼴로 팔릴 정도로 인기가 있다”고 말한다.

20년 전 한 언론사가 예비신부의 어머니들을 상대로 ‘혼수용품 베스트 10’을 조사한 적이 있다. 그때 어머니들이 가장 필요한 혼수로 꼽은 품목은 장롱이었다. 냉장고, 텔레비전, 세탁기는 뒤로 밀렸다. 강산이 두 번 바뀌었다. 혼수품 목록에 전자옷장이 들어갈 때가 머지않은 것 같다.

박종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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