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일반 칼럼

[여적]집필 위험수당

opinionX 2016. 12. 15. 11:19

작가 황석영이 대하소설 <장길산>을 한국일보에 연재한 것은 1974년부터다. 당시 장기영 한국일보 회장은 황석영을 불러 자료조사비로 집 한 채 값에 해당하는 거금을 줬다. 황석영은 그 돈을 동료 문인들에게 술과 밥을 사주느라 보름 만에 다 써버리고 다시 장 회장을 찾았다. 장 회장은 수표를 끊어 황석영에게 건넨 뒤 자신의 명함에 메모를 했다. 그는 “단골 술집 전화번호일세. 술 마시려면 여기서 내 이름 달아놓고 마시게”라고 했다. ‘한국의 국보 1호’를 자칭했던 무애 양주동 박사는 현관문에 보안장치를 설치해놓고 원고료가 짜거나 공짜원고 청탁을 하려는 사람들을 문전박대했다고 한다.

요즘 문인들에게 이런 일화는 흘러간 시절의 얘깃거리일 따름이다. 시 한 편 고료는 3만~10만원, 소설이나 평론은 200자 원고지 한 쪽당 5000~1만원이다. 한 달 생활비 300만원을 벌려면 시인은 시 30~100편, 소설가와 평론가는 300~600쪽의 원고를 써야 한다. 함민복은 시 ‘긍정적인 밥’에서 “시 한 편에 삼만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라고 썼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시인 최영미는 지난 5월 페이스북에 “연소득 1300만원 미만인 생활보조금 신청 대상자”란 글을 올려 독자들을 짠하게 했다.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이 1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국정 역사교과서 관련 질의를 굳은 표정으로 듣고 있다. 연합뉴스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검토본 집필진 31명의 집필료가 어제 공개됐다. 집필진은 1인당 20쪽 분량을 쓰고, 평균 2481만원을 받은 것으로 집계됐다. 신형식 이화여대 명예교수는 최고액인 3657만원을 받았다. 한 쪽당 243만원이다. 기존 국정·검정교과서 집필진이 한 쪽당 7만~12만원을 받은 것에 견주면 최대 20배가 넘는다. ‘글쟁이는 가난해야 한다’는 신조 하나로 버티며 생계를 잇고 있는 문인들에겐 억장이 무너지는 얘기다.

집필료가 터무니없이 많다보니 교육부가 거센 비판여론을 감수한 데 따른 ‘위험수당’을 집필진에게 지급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국정 역사교과서가 친일·독재를 미화한 것은 물론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거나 오류가 수백건에 달하는 ‘불량 교과서’로 판명난 만큼 세금으로 지급된 집필료를 환수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즉각 폐기해야 할 국정 역사교과서다.

박구재 논설위원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