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독일 풍속사가 에두아르트 푹스의 <풍속의 역사>에는 복장, 패션, 연애, 사교생활, 매춘제도 등이 흥미롭게 담겨 있다. 하이힐 이야기도 그중 하나다. 푹스는 하이힐이 만들어진 배경으로 두 가지를 들었다. 하나는 실용적인 요구다. 중세 이후 절대왕정 시대에 이르기까지 이탈리아 등 유럽인들은 집에 변소가 없어 요강 등을 이용해 창밖으로 대소변을 투척했다. 포장이 안된 도로는 비만 오면 오물이 뒤섞인 진흙탕이 됐다. 당시 하이힐은 발을 더럽히지 않고 길을 가는 유용한 도구였다. 다른 하나는 여성의 자기 과시욕이다. 하이힐을 신으면 넘어지지 않기 위해 몸을 뒤로 젖히는 자세를 취해야 하는데, 이때 자연히 엉덩이는 튀어나오고 가슴을 내밀게 된다. 신체 특정 부위를 강조하기 위해 하이힐을 발명했다는 것이다.
근대 들어 도시 하수도가 발달하면서 오물 진창길은 사라졌다. 그런데도 하이힐을 신는 풍속은 이어지고 있다. 푹스는 “높은 하이힐을 신음으로써 자기의 가장 중요한 이해관계를 장악하려는 계급과 개인들 사이에서 계속해서 유행했다”며 하이힐 유행 전파자로 사교계 여자들과 매춘부를 꼽았다. 푹스의 얘기대로라면 하이힐이 지속된 원인으로 여성의 자기 과시나 성의 상품화 이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게다가 하이힐은 보행에 불편할 뿐 아니라 건강에도 해롭다. 최근 국내 연구진은 하이힐이 발목관절의 퇴행을 촉진하고 관절염과 통증을 유발한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출처:경향신문DB
일본에서 하이힐을 벗어던지자는 운동이 일고 있다. 한 배우가 기업의 하이힐 착용 강제는 성 차별로 법으로 금지해야 한다는 내용을 트위터에 올린 게 계기가 되어 인터넷상의 ‘쿠투(KuToo)’운동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지난 3일에는 일본인 1만8856명의 지지 서명이 담긴 건의서가 후생노동성에 제출됐다. 쿠투는 구두의 일본어 ‘구쓰(靴)’와 고통을 뜻하는 ‘구쓰(苦痛)’에 성폭력 고발 운동인 ‘미투(Me too)’를 합친 조어다. 서양에서 유래해 전 세계로 퍼진 하이힐은 오래전에 사라진 중국의 전족(纏足) 못지않은 봉건적인 인습이다. 2015년 영국에서도 직장 내 하이힐 거부운동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이 봉건 왕정시대인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다.
<조운찬 논설위원>
'일반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설]교통약자에게 최고의 복지는 이동편의다 (0) | 2019.06.07 |
---|---|
[송민령의 뇌과학 이야기]뇌-컴퓨터 인터페이스 (0) | 2019.06.07 |
[그곳에서 사람을 만나다]서점이 사라져 아쉬운 것들 (0) | 2019.06.05 |
[노명우의 인물조각보]셀피 찍는 사람 (0) | 2019.06.05 |
[기고]게임중독, 질병 분류보다 시급한 과제 (2) | 2019.06.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