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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전국 어디든 동네마다 서점 하나쯤은 있던 시절. 그때 지방에서 서점을 했다는 이의 추억은 흥미진진하다. 인기작가의 책이 나오면 서울에서 책을 실은 트럭이 밤새 달려와 미리 고지한 학교 운동장에서 배급했다고. 새벽부터 운동장에서 줄 서서 기다린 서점 주인들은 한 권이라도 더 가져가려고 아우성쳤다고.
그는 말했다. 이런 시절이 올 줄 몰랐다고. 그는 방구석에 앉아서 책을 골라 장바구니에 넣고 클릭만 하면 이튿날 대문 앞까지 종이책을 배달해 주고,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만 연결되면 전자 북을 사서 보게 될 줄은 짐작도 못했을 것이다. 평생 책 냄새를 맡으며 작가 이름 하나하나를 익히고, 손님들이 들뜬 얼굴로 책을 고르는 모습을 본 그는 차마 세상이 좋아졌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예언했다. 곧 서점은 사라질 거라고.
하지만 그곳에는 서점이 멀쩡히 살아남아 있었다. 번화가 한복판에 꽤 큰 자리를 차지하고, 책 냄새를 품은 채 건재했다. 대개 요즘 서점은 학습지를 꽂아놓은 책장이 절반 넘게 차지하지만, 그 서점의 중심부에는 인문학과 철학과 문학이 꼿꼿하게 버티고 있었다. 그리고 한쪽 가판대에는 지역 작가들의 책이 빽빽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지역 풍습과 문화를 알리는 책부터 수필집, 고등학생 문학 동아리 학생들이 묶은 문집까지 책의 종류도 다양했다. 학생들 문집은 다른 지역에서는 인터넷으로만 살 수 있다고 했다.
“몇 년 전에 폭우 때문에 서점이 물바다였어요. 그때 시민들이 팔 걷어붙이고 나서서 이 서점을 살렸어요.”
서점 수필 동아리에서 글공부한다는 이는 서점이 이 지역의 자부심이라고 했다. 서점에서는 일 년 내내 문화 행사가 열리고, 도서관과 연계해 도서 대출도 가능하다고 했다. 서점이 저절로 자부심이 된 건 아니었다.
그래도 서점은 썰렁했다. 그곳에서 옛 서점 주인이었던 이의 말이 생각났다. 책을 사러 온 이가 과연 무슨 책을 고를까 보는 것도, 오랫동안 눈인사만 하고 지낸 아이가 자라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참 좋았다는. 그러고 보면 서점이 사라지는 것이 아쉬운 게 아니라, 책이 사람을 잇던 시절이 끝나는 게 못내 헛헛한 것이다.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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