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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서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대한축구협회 제공



언제부턴가 한국 TV에 베트남 축구가 생중계되고 있다. 국내 팬들이 붉은 유니폼의 베트남 대표팀을 한국 못잖게 열렬히 응원하기도 한다. 그가 있어 생겨난 일이다. 베트남 대표팀 사령탑, 박항서 감독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수석코치로 거스 히딩크 감독을 보좌한 그는 한국 4강 신화의 숨은 주역이다. 폴란드와의 1차전에서 황선홍이 첫 골을 쏘고 그에게 달려가 얼싸안는 장면이 지금도 종종 나온다. 박 감독은 훗날 인터뷰에서 “골을 넣으면 벤치에 세리머니를 하라고 농담한 게 전부였다. 내게 안기라는 소리 안 했다”며 허허 웃었다. 

베트남 축구는 박항서 이전과 이후로 확연히 나뉜다. 2017년 10월 박 감독 부임 이후 2018년 23세 이하 아시안컵 준우승, 아시안게임 4강, 스즈키컵 우승에 이어 동남아시안게임 2연패(2019·2022년)를 달성하고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까지 올랐다. 모두가 베트남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성적을 올린 것이다. 베트남은 ‘박항서 매직’에 열광했고, 2002년 한국처럼 거리가 온통 붉은 응원 물결로 뒤덮이는 축구 열풍이 나타났다. 

“최선을 다했으니 절대 고개 숙이지 마라.” 2018년 23세 이하 아시안컵 결승전에서 연장전 끝에 패한 뒤 선수들에게 전한 말이다. 박 감독은 패배 의식에 젖어 있던 선수들에게 자신감부터 불어넣었다. 실력대로 선수를 뽑고, 체력과 전술을 강조한 그는 역대 최고의 성적을 계속 내면서도 “아직 배고프다”고 말했다. 히딩크 감독의 스타일을 이어받은 것이다. 그래서 베트남의 상징인 쌀을 보탠 ‘쌀딩크’라는 별명을 얻은 박 감독은 ‘파파 리더십’으로도 유명하다. 경기 후 선수들을 한 명씩 따뜻하게 안아주는 인자한 아버지 같은 모습으로 잠재력을 일깨워주는 리더십이다. 

박 감독이 5년 만에 베트남 대표팀 감독을 그만둔다고 한다. 12월 미쓰비시컵 대회를 마지막으로 사령탑에서 물러나기로 했다. 영광의 이별을 택한 것이다. 눈부신 실적을 쌓아올린 정상의 자리에서 내려오는, 쉽지 않은 선택이다. “지난 5년은 즐거운 여행이었다”고 그는 말했다. 박 감독은 베트남에 축구 기술뿐 아니라 열정과 희망도 함께 전파했다. 말하자면 ‘축구 한류’다.

<차준철 논설위원 che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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