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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여적

[여적] 선감학원

opinionX 2022. 10. 21. 09:26

일제강점기부터 1980년대까지 아동학대 벌어진 선감학원 수용 피해자인 박차복씨가 18일 경기 부천시 사무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 중 자신의 선감 학원 당시 원아대장을 살펴보고 있다. 권도현 기자

국가 권력이 단속·근절·일제소탕 대상으로 삼은 ‘부랑아(浮浪兒)’는 부모나 보호자 곁을 떠난 떠돌이 아이들을 뜻했다. 하지만 집도, 부모도 있고 떠돌이도 아닌 아이들이 마구잡이로 끌려갔다. 누님 댁에 가려고 서울에 왔다가 서울역에서, 할머니와 시장을 보다가 손을 놓치고 길을 잃어서, 장난감 총을 만들려고 길에서 나무젓가락을 줍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가난해서 옷차림이 허름한 죄밖에 없었다. 그렇게 수용소에 끌려간 아이들은 불법 감금 상태에서 강제노역과 가혹행위에 시달렸다. 추위와 허기 속에 낮에는 고되게 일하고 밤에는 기합을 받았다. 그래서 매 맞아 죽고, 병들어 죽고, 도망치다 바다에 빠져 죽은 아이들이 허다했다. 1942년부터 1982년까지 40여년간 한국 땅에서 벌어진 ‘인권 유린’이다. 

선감학원은 1942년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경기 안산의 외딴섬 선감도에 세운 소년 강제수용소다. 부랑아들을 교화한다는 명목을 내세웠지만 실상은 빈민층 아이들을 쓸어담아 가두는 만행이었다. 문제는 광복 직후 경기도가 이 시설 운영을 맡아 전두환 정권 시절인 1982년까지, 원생 연인원이 5000명 넘도록 같은 일을 계속했다는 점이다. 부랑아는 도시 미화, 정의사회 구현을 위해 사라져야 할 존재로만 취급됐다. 그런데도 1990년대 들어 일본인 목격자 이하라 히로미쓰가 선감학원의 실상을 폭로하기 전까지 우리는 아이들이 목숨을 걸고 그곳을 탈출하려 했던 이유를 알지 못했다. 공권력이 저지른 심각한 아동 납치 범죄와 인권침해에 모두가 눈을 감았던 것이다. 일제의 만행을 답습하면서도 문제의식을 갖지 못한 것이라 더욱 부끄럽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20일 선감학원의 중대한 아동 인권침해 책임이 국가에 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아동 사망자 29명을 확인한 진실화해위는 정부와 경기도에 공식 사과를 권고하고, 피해자들을 상대로 한 배·보상 특별법 제정을 촉구했다. 선감학원이 폐쇄된 지 40년 만에야 내려진 국가 차원의 첫 진실 규명으로, 너무나 늦었다. 남은 것은 피해자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은폐된 국가폭력 범죄의 실상을 밝히는 일이다. 뒤처진 만큼 더욱 신속히, 철저히 정의를 회복해야 한다.

<차준철 논설위원 cheol@kyunghyang.com>

 

 

오피니언 | 여적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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