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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으로 일하던 역사학자 ㄱ씨가 41세의 젊은 나이에 지난달 17일 세상을 떠났다. 3주 전 그는 자택에서 뇌출혈로 갑작스럽게 쓰러져 의식을 잃었고, 다시 깨어나지 못했다. 올해 초 취재차 그를 만난 적이 있다. 소탈하고 선량한 사람이었다. 재단 안팎의 평도 다르지 않았다. 성실하고 공부 열심히 하는 젊은 학자라고 했다.

ㄱ씨는 중국 지린(吉林)대에서 고구려 산성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0년간 중국 곳곳을 답사하며 연구에 몰두했다. 그러나 그는 2013년 재단에 들어온 뒤로 원하던 공부를 할 수 없었다. 연구자가 연구가 아닌 과중한 행정 업무에 시달려야 하는 환경이 문제였다. 최근까지도 그는 재단 10주년 기념행사와 학술회의, 비전 선포식 같은 업무를 전담하다시피 했다. 지난 7~9월 3차례 중국 출장을 다녀왔고, 이 기간 현지 답사와 토론회, 학술회의 및 자료집 제작 업무도 처리해야 했다. ㄱ씨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한 대학교수는 “매일 밤 10시까지 온갖 행사 준비에 쫓겨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더라”면서 “모든 일정이 끝난 다음에야 구석진 곳에서 남은 음식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던 그를 기억한다”고 말했다. 매일 야근을 해도 시간이 모자랐다. 주말에도 출근했지만, 논문 한편 제대로 쓸 수가 없었다. ‘연구성과 50%·사업성과 50%’라는 재계약 기준도 그를 압박했다. 실제로 재단 내에서는 “연구가 너무 부족한데 재계약하면 안되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

과열된 고대사 논쟁도 그를 힘들게 했다. 지난 6월 부서 이동 전까지 재단 내 한·중관계연구소에서 일했던 그는 고조선 수도와 낙랑군 위치 문제와 같은 고대사 영역의 해묵은 논쟁거리들을 마주해야 했다. ‘재야’와 ‘강단’의 상충하는 견해를 두루 듣겠다며, 재단이 진행하고 있는 ‘상고사 토론회’ 실무 전반을 그가 처리했다. 재단을 ‘식민사학의 본거지’라 생각하는 이들의 항의에 응대하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영토와 국력에 집착하는 재야사학계의 주장은 학술적으로 근거가 없다는 게 학계 일반의 평가다. ㄱ씨 역시 마찬가지 입장이었다. 그는 자신이 담당하는 상고사 토론회를 두고 “학문적으로는 의미가 없는 행사”라며 “이제 그만할 때도 됐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소망은 이뤄지지 않았다. 국회의원이 평생 역사를 공부한 학자를 불러다 ‘왜 우리나라에 유리한 역사를 쓰지 않느냐’며 질책하는 시대이기 때문일까.

재단은 최근 몇년 동안 재야사학계의 공격에 일방적으로 휘둘리기만 했다. 낙랑군 위치를 한반도 북부로 표기했다는 이유로 재야사학계의 공격을 받아 좌초·중단된 동북아 역사지도 사업이나 하버드대 연계 고대 한국사 연구 사업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를 아는 또 다른 사람은 “ㄱ씨가 학자로서 인정할 수 없는 주장을 상대하느라 정작 자기 공부는 하지 못하는 상황을 많이 힘들어했다”면서 “그의 죽음은 역사 과잉이 낳은 비극”이라고 했다. 그의 말처럼 지금은 역사 과잉의 시대다. ‘위대한 상고사’를 외치면 환호받고, 있는 그대로 역사를 보자고 하면 ‘매국’이라 손가락질을 당한다. 그런 가운데 대다수 연구자들이 처한 환경은 여전히 열악하다. 이 역설적인 비극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심진용 | 문화부 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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