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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나를 나답게 만들까? 우주의 어떤 것으로 대치할 수 없는 나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우리는 다른 모든 만물들이 그러하듯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운명적으로 던져진 환경, 특히 공간과 시간의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우리는 부모와 사회, 국가라는 공간과 21세기라는 시간이라는 씨줄과 날줄의 교차점이 만든 이념과 세계관 안에서 산다. 우리 대부분은 그런 세계 안에서 편안해한다.

교육은 이 세계라는 알을 깨는 행위다. 자신이 알고 있는 세계가 편협하다는 것을 깨닫고 그것으로부터 탈출하여 다른 다양한 세계를 경험하는 것이야말로 교육의 핵심이다.

그래서 ‘교육하다’라는 영어 단어 educate를 보면 교육의 목적을 감지할 수 있다. 그것은 자신이 처한 운명에서 자신을 용감하게 ‘밖으로(e) 이끄는(duction)’ 행위다.

그러나 우리는 남들이 만들어 놓은 획일화된 도그마와 지식을 강제로 암기하는 것이 교육이라고 착각한다. 이런 교육은 자신의 편견을 더욱더 견고하게 만들 뿐이다. 우리는 이 껍데기를 깨고 자신의 편견을 제3의 눈을 통해 객관적이면서도 동시에 주관적으로 관찰해야 한다.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고 불편해 진입하고 싶지 않은 시공간으로 애써 진입하여 그 안에서 견디는 노력이 교육이다. 이것이 바로 스스로 자기답게 만드는 여정의 첫 발걸음이다.

소포클레스는 기원전 5세기 고대 그리스에서 살았던 비극작가다. 그는 <안티고네>라는 비극 작품에서 새로운 자신을 찾아가는 한 인간의 노력을 감동적으로 묘사한다. 고대 그리스 테베의 왕 오이디푸스가 사망하자 그의 두 아들, 에테오클레스와 폴뤼니케스는 매년 번갈아가며 테베를 다스릴 것을 결정한다. 그러나 에테오클레스가 한 해가 지나도 왕권을 내려놓지 않자, 폴뤼니케스는 그리스 다른 도시들의 도움을 받아 전쟁을 일으킨다.

이 혈육전쟁에서 두 형제 모두 비극적으로 전사한다. 이때 이들의 삼촌인 크레온이 정권을 잡는다. 크레온은 왕으로서 자신의 정통성을 보장받기 위해, 선왕 에테오클레스의 장례를 성대하게 거행한다. 그러나 반란을 일으킨 폴뤼니케스를 위한 장례는 불법으로 간주하고 금지시킨다. 그 어느 누구도 폴뤼니케스의 시신을 매장하거나 그를 위해 애도할 수 없다. 이 국법을 어기는 자는 돌로 쳐 죽임을 당할 것이다.

이 두 형제에겐 두 명의 여동생, 안티고네와 이스메네가 있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오빠 폴뤼니케스의 시신 처리 방식에서 의견이 달랐다. 안티고네는 그의 시신을 매장하지 않는 것은 인륜에 반하는 일이라 생각하여 그를 매장하려 한다.

반면, 이스메네는 테베의 시민이라면 테베의 법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자 안티고네는 말한다. “내가 내 어머니의 아들(오빠)을 매장하지 않은 채, 들판에서 그 시신을 썩게 만든다면, 그것은 내 일생의 고통이 될 거야.” 이스메네는 반박한다. “우리는 현명하게 행동해야 해. 또한 우리가 여자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해. 우리가 남자와 경쟁해선 안돼.… 나는 권력자들에게 복종할 거야.”

안티고네는 의미심장하게 선포한다. “폴뤼니케스를 내 손으로 묻을 거야. 내가 이 행위로 죽는다 할지라도, 그 죽음이 내겐 영광이 되겠지. 너는 상관하지 마. 나는 이 무시무시한 일을 견딜 테니까.” 안티고네는 자신의 신념에 대한 열정을 그대로 행동으로 옮기는 인간이다. 그녀는 자신이 믿는 것을 위해 목숨을 바칠 것이다. 자신의 행위가 이스메네에게 끼칠 악영향에 대해 아랑곳하지 않는다. 결국 안티고네는 이런 자신의 열정 때문에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다.

안티고네의 말, ‘이 무시무시한 일을 견딜 테니까’라는 문장은 열정이 무엇인지 정확히 정의한다. 이 문장이 고대 그리스어로는 ‘파세인 토 데이논 투토’이다.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는 이 문장을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고 있는 알 수 없는 이상한 현실을 자신의 본질로 수용하다”라고 번역하였다.

‘파세인’(pathein)에서 ‘열정’이라는 영어단어 passion이 유래했다. ‘열정’이란 자기 스스로 익숙하지 않은 현실에 능동적으로 용감하게 자신을 노출시키는 행위다. 열정이란 오히려 자기 스스로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 들어가 그 안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위험한 모험이자 초인적인 용기다.



안티고네와 같은 한 여인이 있다. 현존하는 팝의 여왕이라 불리는 미국 여가수 레이디 가가다. 그녀는 어릴 때 자신의 꿈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제가 커서 뭐가 될지 몰랐어요. 그러나 저는 지나치게 용감해지고 싶었고 온 세상에 열정이 무엇인가를 항상 상기시켜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열정이 어떻게 소리가 나는지. 열정이 어떻게 느껴지는지.” 그녀는 지금도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유일한 인간이 되어간다. 그녀는 ‘나는 이런 식으로 태어났지’라는 노래에서 외친다. “나는 나 나름대로 아름답지.

왜냐하면 신은 실수하지 않으니까. 나는 바른 길로 가고 있어. 나는 이런 식으로 태어났지!” 열정은 자기혁신의 첫걸음이다. 안티고네와 레이디 가가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이 두려워하는 것이 없다면, 무엇을 하고 싶습니까? 당신은 모든 것을 걸 만한 열정을 가지고 있습니까?”


배철현 |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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