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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스마트 시대에 살고 있다. 스마트폰 안에 인류가 지금까지 축적해온 모든 정보가 담겨져 있다. 손가락의 작은 움직임으로 동서고금의 지식과 석학들의 지혜를 한순간에 살펴볼 수가 있다. 스마트 시대에 ‘깨어 있는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세상의 잡다한 지식을 암기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 안에 숨겨진 ‘또 다른 나’에게 말을 걸어 자신의 임무를 알아가는 여정이다. 자기 자신이 아닌 그 어떤 것도 탐구대상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도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지식은 어디에나 있기 때문이다.

공부란 자기 자신의 심연에서 흘러나온 소리를 귀를 기울여 듣는 행위다. 우리의 귀는 자기가 원하는 것만을 듣고 그 욕망의 노예가 되어 기계적으로 살기 십상이다. 그런 자신을 자신만의 공간에서 응시하면 그 안에서 미세한 소리가 흘러나온다. 이 수련을 통해 자신이 설탕 조각 하나를 열심히 쫓아가는 개미와 같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고대 이스라엘에 엘리야라는 예언자가 있었다. 당시 북 이스라엘 왕 아합은 나라를 부유하게 만드는 유능한 왕이었다. 그는 이스라엘 동편에 위치한 아람의 나라를 정복해 영토를 확장하고 해상강국인 페니키아 출신 아내인 이세벨과 결혼하여 지중해 상권을 장악했다.

겉으로 보기엔 나라가 부유해진 것 같으나, 실제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되었다. 당시 대부분 지식인들은 아합과 이세벨이 추진하는 배금주의의 노예가 되어 불의한 현상을 유지하는 선봉이 되었다.

이때 등장한 예언자가 엘리야다. 엘리야는 배금주의의 정신적이며 이론적인 근거를 제시하는 950명의 예언자들과 대결한다. 성서에서는 초자연적인 표현을 빌려 엘리아와 이들의 대결을 묘사한다. 그 안에 숨겨진 핵심은 950명의 부화뇌동하는 지식인들과 한 명의 지식인의 영적인 대결이다.

엘리야는 이스라엘이 건강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그 구성원들 각자가 자신 마음속에 숨겨진 보화를 발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보화는 남들의 기준이나 욕망을 좇아가는 집단적인 배금주의가 아니라 자신의 마음속 깊이 숨겨져 있는 자신만의 위대한 그 어떤 것을 발굴하라고 촉구한다. 이 촉구를 종교적으로 말하자면 ‘회개’다.

회개(悔改)란 다른 사람이 만들어 놓은 틀과 규율을 어겨서 그것을 후회하고 다시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겠다는 결심이 아니다. 로마제국은 기원후 4세기말 그리스도교를 제국의 종교로 만들어 이스라엘에서 시작한 예수운동을 로마종교로 만들려 시도하였다. 그들은 히브리어, 아람어, 그리스어로 기록된 성서를 라틴어로 번역하였다. 그리고 ‘회개하라!’라는 예수의 명령을 ‘아기테 파이니텐티암(agite paenitentiam)’ 즉 ‘고해성사 하라’라고 아전인수 격으로 번역하였다. ‘회개하라’의 원래 의미는 ‘마음을 바꿔라’ 혹은 ‘당신 안에 숨어 있는 원래 마음을 발굴하라!’이다.


도봉구에 거주하던 함석헌 선생_경향DB


엘리야의 주장은 아합과 이세벨의 미움을 샀고, 이제 엘리야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도망치는 신세가 되었다. 그는 밤낮 사십 일 동안 걸어 아무도 거주하지 않는 무시무시한 불모의 땅으로 들어간다. 그는 화산 분출로 이루어진 높다란 산에서 동굴을 발견해 그 안에서 잠을 청한다. 나름대로 일생을 국가와 민족을 위해 일했지만, 돌아온 것은 왕으로부터 살해 위협뿐이었다.

엘리야는 자신의 삶을 경계와 심연의 장소인 동굴에서 바라보기 시작한다. ‘나는 누구인가?’ 엘리야는 누군가 자신에게 말을 거는 소리를 듣는다. 그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동굴에 누워 있는 자신을 관찰한다. 그 순간 들을 수 없을 만큼 작은 소리를 듣는다. 이 소리는 누구나 들을 수 있는 분명한 소리가 아니라 자신에게 온전히 몰입할 때, 서서히 들리기 시작하는 ‘내면의 소리’다. 아마도 아인슈타인이 일반상대성이론을 수학으로 풀기 오래전에 들었던 영적인 소리와 유사한 소리가 아닐까?

엘리야는 이 마음 소리를 듣기 시작하자 다시 불평한다. “내가 일생을 ‘올바르게’ 살았는데… 차라리 죽는 편이 낫겠다.” 그러자 그 마음 소리가 말한다. “나는 네가 찾는 신이다. 지금 네 앞에 내 모습을 드러내겠다. 산 위에 서서 나를 찾아보아라!” 크고 강한 바람이 불어 산을 쪼개고 지진을 일으키고 화산이 분출하여 큰 용암이 터졌으나 그 안에 신은 없었다. 그러나 불이 지나간 후에 ‘섬세한 침묵의 소리’가 들렸다. 엘리야는 바로 그 순간에 신이 바로 이 ‘섬세한 침묵의 소리’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는 이 경계의 심연에서 자신의 마음속에 깊이 숨겨진 위대한 자신의 소리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영웅이 된 것이다.

‘섬세한 침묵의 소리’는 형용모순이다. 이 문구를 히브리어 원문으로는 ‘콜 더마마 닥까’다. ‘콜’은 누구나 들을 수 있는 소리인데, 그 ‘소리’를 수식하는 형용사 ‘더마마’는 침묵이란 의미다. 엘리야는 ‘침묵이라는 소리’를 들은 것이다. ‘소리’를 수식하는 다른 형용사 ‘닥까’는 ‘섬세한, 정교한, 몰입을 통해서만 가능한’이란 의미다. 엘리야가 만난 신은 이것이다. ‘자신에게 온전히 몰입을 통해서 들은 자신의 심연에서 흘러나오는 침묵의 소리.’ 신이 이제 자신의 거주 장소인 성소를 인간의 깊은 마음으로 이주한 것이다.

함석헌은 우리에게 묻는다. “그대는 골방을 가졌는가? 이 세상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이 세상의 냄새가 들어오지 않는. 은밀한 골방을 가졌는가? 그대 맘의 대문 은밀히 닫고, 세상 소리와 냄새 다 끊어 버린 후, 맑은 등잔 하나 가만히 밝혀 놓으면, 극진하신 임의 꿈같은 속삭임을 들을 수 있네.”


배철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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