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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골목에서 만났던 반도네온 연주자를 잊지 못한다. 탱고엔 반드시 반도네온이 있어야 제맛이지. 탱고가 두루 퍼진 까닭이 있다. 당시 사교 무도회엔 왈츠나 추는 정도. 어깨에 손을 얹고 허리나 좀 잡는 스킨십이었는데 탱고는 깊은 포옹까지 거침없었다. 유럽으로 건너가선 콘티넨털탱고라 하여 점잖은 탱고로 바뀌기도 했다. 반도네온 자리에 유사품 중후한 아코디언을 쓰고 말이다. 본고장 부에노스아이레스는 확실히 뭔가 달라. 진한 반도네온 맛에다 탱고 춤꾼들의 ‘밀착’이 장난 아니다. 무희의 허리가 으스러질 지경.

간밤 펄펄 눈이 내렸는데, 탱고를 추듯 눈발이 춤을 추었다. 나도 덩달아 설뚱해서 숫눈밭에 발자국을 남겼지. 춤추는 인디언처럼 모카 가죽신은 아니라도 장화를 꺼내 신고 어지럽게 돌아다녔다. 눈발자국이 마치 춤꾼의 스텝 같았어. 사진을 찍어둘 걸 그랬다. 

스키장에서 물을 얼려 만든 가짜 설빙 말고, 하늘에서 내린 진짜 눈발은 감격스럽다. 사람도 생각도 진짜를 만나야 가슴이 뻥 뚫리고 눈이 뜨인다. 아이들 친구 ‘펭수’ 말고 진짜 펭귄 이야기를 하나 해볼까. 수컷 아델리 펭귄은 눈밭 얼음길을 헤매고 다니면서 암컷에게 줄 조약돌을 진종일 고른다. 예쁜 색깔의 돌을 모아 신혼둥지를 쌓고, 직접 구애 선물로 바치기도 해. 완벽한 조약돌을 찾아 온 해변을 뒤지고 다니다가 허탕을 치고 돌아오는 경우도 있단다. 얼마나 서럽게 꺼이꺼이 우는지 남극 과학자들도 따라서 울 지경.

발끝에 조약돌을 바치자 암컷이 마다 않고 집어 물면 프러포즈는 대박 성공. 곧바로 탱고 춤을 추러 얼음산 밀롱가로 사라진다. 얼음계곡을 지나온 바람소리가 웨딩마치로 울려 퍼지는 순간이렷다. 

함부로 마구발방하는 세상에 귀하고 소중한 말과 마음을 내밀어야 한다. 무례하고 해악한 말, 날이 선 짱돌을 집어던지는 짓을 재미 삼은 자들도 있다. 조약돌을 찾듯 고운 말을 골라쓰는 이들은 복이 있다. 인생의 은인들을 꼭 만나게 되리라.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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