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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승훈의 단편소설 ‘졸피뎀과 나’에는 가난뱅이 작가 청년이 등장한다. 어깨는 넓지만 종아리가 가는 아버지를 미워한다. 아버지는 밑구멍이 째지는 형편에도 달마를 닮은 돌덩어리 수석을 1000만원에 사오는 한심한 인간. 하루 종일 신세한탄만 주절대다가 멋진 차를 타고 서둘러 퇴근하는 사촌형 빵집사장. 엄마와 청년은 자정까지 빵 만드는 노동을 하고 허리가 고꾸라져 귀가한다. 빵집 형수는 호텔 연회에서 “도련님! 고기에서 흙냄새가 나지 않아요? 비린내가 나요”라면서 시건방을 떤다. 연립주택의 반지하방. 창문도 북향이라 햇볕도 없는 집. 사도들이나 살 법한 카타콤 같은 지하세계를 전전한다. 정신병원에서 지낸 한때의 이력과 감정기복이 심한 여자들과 지난한 연애사, 6평짜리 원룸으로 이사한 뒤 야뇨증으로 실례한 이불을 널던 가을밤의 풍경 등등. 흡사 영화 <기생충>의 시나리오 같은 얘기들이 똑같이 펼쳐진다. 

나도 어렸을 때 야뇨증을 잠시 앓았다. 자다가 이불에 오줌을 지렸다. 누이가 오줌싸개라고 놀리면 더 심해졌다. 평생 처음 한약을 달여 먹기도 했다. 효능은 딱히 없었다. 변소는 멀고 외딴곳, 무서웠다. 캄캄한 밤중에 그곳까지 혼자선 못 갔다. 교회에 얹혀살았기에 거룩한 공간이라는 반복된 주입도 어린 나를 괴롭혔다. 지금 같아선 십자가 강대상 밑이라도 시원하게 오줌을 갈겼을 텐데. 

어느 날 엄마가 조그만 요강을 하나 내게 안겨주셨다. 오직 나만의 요강. 만수무강, 만수에겐 요강이 없다는 뜻. 그러나 나에겐 요강이 생겼노라. 이후 야뇨증은 씻은 듯 없어졌다. 

지금은 몇 걸음이면 안방에서 변소까지 가는 세상이 되었다. 사람이 때론 얼마나 비열하고 사악한지 알게 되었기에 악령, 귀신 따위 믿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아. 목사란 목표가 없는 사람, 제때 오줌 눌 일 말고는 세상에 무슨 떨칠 만한 목표 따위 없다. 그러니 오줌싸개여도 괜찮아. 적당히 가난해도 괜찮아. 졸피뎀을 먹어야 잠들 수 있는 당신도 괜찮아 다 괜찮아.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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