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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엔 늘 잠이 모자랐다

학교 늦을라, 흔들어 깨우는

엄마가 미웠다 군용 모포 끌어당기는

기상나팔도 출근 재촉하는

알람도 싫었다 더 자고 싶었다

아예 깨고 싶지 않은 꽃잠도 있었다

꿈이 많던 시절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인가

새벽잠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꽃잎도 사금파리도 아스라한 별똥별인데

속절없이 깨어나 은하의 기슭

뒤척이는 날이 많아졌다 어쩌다 돋는

꿈 한 촉도 오래 정박하지 못했다

꿈의 잔해가 부스럭거렸다



굽 낮은 튜바의 음색이었다


장문석(1957~)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어리고 젊은 나이에는 잠이 많아 늘 잠이 부족했는데 예순이 되니 잠이 없어졌다고 시인은 말한다. 어찌할 도리가 없이 새벽이면 일어나 “은하의 기슭”을 이리저리 헤맨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예순의 나이는 장중한 저음(低音)을 내는 금관악기인 튜바의 음색이라고 소회를 밝힌다. 예순이 와서 잠은 사라졌지만 뭔가 이승에서의 인생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 또 말씨와 행동이 정중하게 되었다는 의미로도 읽힌다. 시인은 다른 시편에서 예순 살이 되니 “산등성을 물들이는 노을빛이 고즈넉했다”라고 느끼게 되었고, 또 “삶이란 더불어 밥 먹을 인연을 찾아 떠나는/ 여행길”이라고 알게 되었다고 썼다.

공자는 예순 살을 ‘이순(耳順)’이라고 불렀다. 귀가 순해지고 생각하는 것이 원만해져 들으면 곧 이해가 되는 때가 예순의 때라고 했다. 모난 데가 없이 부드럽고 너그럽고 속이 깊고 조용한 때라는 뜻일 게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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