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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전, 시인 송경동이 파인텍 소속 두 노동자의 굴뚝농성을 지지하는 연대의 날을 제안했다. 콜트콜텍 때도 그랬고, 희망버스 때도 그랬고, 작년 광화문 노숙농성 때도 그랬었지. 익숙하지만 늘 새로운 예술행동들의 시작. 이른바 ‘408+49’ 프로젝트이다.

2006년 한국합섬의 정리해고에 맞서 5년간 투쟁했던 노동자들이 있었다. 그 노동자들은 자신이 다녔던 회사를 인수한 스타케미칼이 공장부지와 기술을 팔아먹고 위장 폐업했을 때, 격렬하게 저항했다. 그들 중에 차광호 동지는 2014년 5월27일부터 408일 동안 세계 최장기 고공농성을 벌였다. 그리고 2017년 11월11일, 다른 두 명의 노동자들은 스타케미칼 본사가 있는 목동 에너지공사 75m 굴뚝 위로 올라가 다시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12월30일이면 농성 49일째가 된다. 광화문 캠핑촌에서 함께 싸웠던 촌민들이 다시 목동으로 달려가 연대의 날을 갖기로 한 것이다. 매서운 추위가 계속되고 있어, 얼마나 참여가 가능할지 걱정을 했지만, 제안 5일 만에 무려 822명이 함께하기로 했다.

사회적 재난에 개입하는 예술행동은 2000년대 들어 구체적인 문화운동의 한 영역으로 자리 잡았다. 2004년부터 시작된 대추리 미군기지 반대운동이 아마도 동시대 예술행동의 본격적인 첫 번째 사례일 것이다. 예술가들은 ‘파견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사회적 재난의 현장에 참여하여, 다양한 예술 활동을 전개했다.

대추리 미군기지 반대운동을 시작으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운동, 한진중공업·쌍용자동차·콜트콜텍·기륭전자 등 파업노동자들의 싸움 현장, 밀양송전탑 건설반대·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등 안전·탈핵·평화운동의 현장, 세월호 재난의 현장, 그리고 블랙리스트 진상규명과 박근혜 퇴진을 위한 광화문 캠핑촌 운동에 이르기까지 예술행동은 한국 사회 재난 현장에서 운동 당사자들과 연대했다. 왜 예술행동은 다시 재난과 투쟁의 현장으로 돌아갈까?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우리의 삶이 갈수록 힘들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평범한 삶을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삶의 터전에서 쫓겨난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너무 많이 있다. 평생을 평화롭게 살다가 송전탑을 설치하고 군 시설 들어와야 한다고 해서 마을을 떠나야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다시 학교로 돌아오지 못한 꽃다운 학생들도 있다. 이들 모두가 자본과 공권력에 의해 일상의 삶이 망가진 사람들이다. 예술인들이 달려간 곳은 사람의 삶이 파괴된 곳이다.

재난의 현장에서 예술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파견예술가라고 부른다. 예술가들은 재난 현장에 항상 있는 것은 아니다. 재난이란 언제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예술행동은 언제나 사후적일 수밖에 없다. 파견예술가들은 자신의 작업실이 재난의 현장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그들은 언제든지 재난의 현장에 파견 나갈 자세가 되어 있다.

광화문 캠핑촌이 사라졌어도, 시민의 힘으로 정권이 바뀌었어도 예술행동은 지속된다. 아직 해결되지 못한 일들이 산적하기 때문이다. 2000년 이후 예술행동은 늘 누적되어왔다. 예술행동의 끝은 사실상 없다고 보는 게 맞다. 사회적 재난과 시국사건이 생길 때마다 예술행동이 요청되고, 개입하기 마련이니까. 예술행동은 본능적으로 ‘5분 대기조’의 운명을 갖는다. 재난이 발생하거나 연대가 필요한 곳이라면 본능적으로 현장으로 달려간다. 오랫동안 활동하면서 파견예술인 사이에 강력한 네트워크가 형성되었고, 재난의 개입에 대한 필연적인 의지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사실 예술행동이 계속 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아직 고통과 파국의 시대에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는 점에서 결코 좋은 일은 아니다. 파견예술가들은 언젠가 이 일이 끝나기를 바라지만, 그래도 현장에서 계속 활동하고 싶은 양가적 감정을 가진다. 그래서 예술행동은 중단되지는 않을 것이다.

어느 오래된 애니메이션의 주제가처럼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짜~짜~짜~짜~짜~앙가 엄청난 기운이” 틀림없이 생겨나면서 예술행동은 언제나 이미 현장에 있을 거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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